일본 세이죠(成城)중학을 졸업하고, 중국 후장(호江)대에서 수학했다. 1920년 ‘개벽’에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백조’ 동인으로 활동했다.
조선일보, 시대일보, 동아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1937년 손기정 선수 사진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피검돼 1년 동안 복역했다.
그의 문학세계는 단편을 주로 창작한 전반기와 장편 역사소설을 주로 창작한 후반기로 나뉜다.
단편소설들은 식민지 조선의 일상에 대한 적확한 묘사, 아이러니적 기법의 능란한 사용, 억압적인 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을 보여주었다. 초기에는 지식인의 일상적 삶과 고뇌를 묘사하는 작품들(‘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을 발표하다가 이후에는 식민지 하층민의 빈궁한 삶을 재현하는 작품들(‘운수 좋은 날’ ‘고향’ ‘정조와 약가’)을 창작했다.
후기에 창작된 역사소설은 대중성이 강화되고 민족정신이 추상화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시대적 압박에 맞서 우회적으로 현실에 대한 전망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현진건은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 근대적 한국 단편소설의 미학을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주의 문학의 기초를 닦았다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1943년 4월 25일 밤 서울 제기동 자택에서 지병인 폐결핵과 장결핵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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