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집 옥상에서 받아온 빗물이야. 난이랑 집에 있는 식물에 주게. 아주 잘 자랄 거야.”
순간 꺼져 있던 머릿속 전구가 번쩍하고 들어 왔다. 사실 집에 있는 난이 한 달에 하나씩 말라 죽어 갔다. 다시 새로운 난으로 바꿔 심어봐야 석 달을 못 버텼다. 그런데 난과 식물에 빗물을 주자 거짓말처럼 싱그러움을 뽐낸다.
너무도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진작 생각하지 못했나 하고 뒤늦게 후회해 본다. 화학성분이 들어 있는 수돗물보다는 질소를 비롯해 유용한 성분이 다양하게 들어 있는 빗물이 좋다는 것은 어쩌면 상식인데. 갑자기 난과 식물들에 미안해졌다.
어느 골프장 코스관리 직원은 아침마다 골프장 잔디와 대화를 한다. 병원장 출신의 한 골프장 오너는 골프장 그린에 청진기를 대고 진찰을 한다. 한 골프장 CEO는 아침마다 골프장 코스를 점검하면서 새와 나무, 자연에 “사랑한다, 사랑한다”를 외친다고 한다.
일본 고베(神戶) 지역의 한 골프장 코스관리 직원은 매일 아침 잔디에 볼을 갖다 대고 심지어는 입맞춤까지 한다. 솔로몬 왕은 수많은 동물과도 대화했다고 한다. 교감을 통해 잔디가, 새들이 잘 자라 주길 바라는 애정이 깃들어 있다. 이 모든 것이 관심과 사랑, 교감하려는 마음이 부족했던 탓이다. 적당한 관심과 관리로 올봄 향기 그윽하게 품은 꽃이 피어나길 바랐던 지나친 욕망만 있었다.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 장미꽃 한 송이도 분명 갈망하는 애정과 열정, 생명과 자존감이 있는 것인데….
수컷 꿩은 먹이를 찾아내면 신호를 보내 암컷을 유혹한다. 봄이 되면 휘파람 소리를 내며 유혹하는 새도 있다. 여린 잎들은 살아남기 위해 보호색으로 갈아입는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간만 소중한 것이 아니다. 작은 풀 하나에도 생명의 존엄성과 소중함이 분명 존재한다.
앨리스 워커는 “이 세상의 동식물은 그들 나름으로 존재 이유가 있다. 여자가 남자를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닌 것처럼, 동식물도 인간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작은 바람, 작은 풀잎, 작은 물소리, 작은 새소리에도 밝게 웃으며 손 흔들어 주고 싶다. 이 작은 잔디, 나무들이 나의 삶을 책임져 주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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