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 55년 연극계 원로… 오늘부터 연극 ‘도토리’ 무대에
“도토리 원래 다람쥐 몫인데
줍는 등산객 보고 영감 얻어
남의 것 탐하는 얘기로 확대”
“옛 춤을 보면 기개가 있어요. 아낙들도 치마폭 넓은 만큼 크게 춤을 췄지. 노랫말 속엔 해학이 있어. 농요나 민요를 들어보면 우스개가 많아. 고된 일과 삶을 잊어버릴 정도로 생기가 넘치지요. 삶에 대해 굉장히 적극적이었다는 의미예요.”
신춘문예로 등단한 지 50년, 생애 첫 희곡을 쓴지는 55년이다.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반세기를 살아온 오태석(77·사진) 극단 목화 대표는 “한국인의 흥과 멋을 보여주겠다”며 눈 오는 남산 자락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오 대표는 여든 가까운 나이에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이 몸짓에서 나온다고 했다. 지난해 발표한 신작 연극 ‘도토리’를 가다듬어 24일부터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올리는 오 대표를 지난 21일 극장 내 한 카페에서 만났다.
1984년 극단 창단 이래 연극인생을 멈춘 적 없는 그이지만, 작년 6월 원로연극제를 기점으로 작·연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 대표는 “이제 ‘좋은 연극’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은데,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기저기 흩어진 작품들, 피지 못한 꽃과 씨로 썩어버릴 뻔한 것들을 살려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잘 정리해 물려줘야 또 누군가 더 발전시켜 주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오 대표는 셰익스피어 원작 ‘템페스트’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창작해 본향인 영국에서도 호평받은 바 있다. 그런 그가 일생을 다해 기록하고, 또 후배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건 잊고 산 우리의 성정(性情)과 정서가 담긴 무대라고. “연극은 결국 셰익스피어가 말한 ‘거울’이에요. 방식은 다양한데, 우리 선조들은 그걸 ‘웃으며 넘기는 지혜’로 풀어냈죠. 바람 불면 잠시 누웠다 일어나는 풀잎처럼 말이야. 그 밝고 대담한 에너지가 무대에서도, 사회에서도 사라졌어요. 전부 편 갈라 싸우고만 있지. 난 요즘 속상해서 신문을 안 봐.”
연극 도토리에는 오 대표가 본래 ‘우리’라고 믿는 선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지적장애가 있고 억울하게 옥살이까지 하지만 “남의 물건엔 절대로 손대지 않겠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인물들이다. 연극은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혼탁한 세상을 되돌아본다. “도토리를 마구 주워가는 등산객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어요. 그거 사람 것 아니에요. 멧돼지, 다람쥐 몫이잖아. 그러니 멧돼지가 인가에 내려오고, 밭을 해치고, 포획되고…. 불행의 시작은 인간의 탐욕이죠. 우리 사는 모습도 똑같아. 배우고 가진 사람들이 남의 것까지 탐하니 이 지경 됐지. 그래서 이야기를 인간사로 확대해 봤어요.”
도토리가 끝나고 오 대표는 5월 명동예술극장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올린다. 2006년 런던에 초청돼 15일간 전 석 매진을 기록한 대표작이다. 가을엔 신작을 또 준비 중이다.
오 대표는 “줄거리는 아직 비밀이지만 ‘봄 봄’‘메밀꽃 필 무렵’ 같은 따뜻한 정서가 담긴 작품”이라고 했다. “우리 정서 기록해 둬야 후세에 ‘아 그랬구나’ 하지. 가제는 ‘모래시계’인데, ‘전자레인지 속 팝콘’ 같은 것도 재밌을 것 같아. 하하”
글·사진=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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