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채·윤명로 작품전도 개막
화랑街, 단색화 넘어 외연 확장
미술의 근원·본질적 가치 조명
“법칙은 실재 속에 숨어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변하지 않는다.”
제한된 색채와 선으로 구성된 격자형의 기하학적인 그림으로 현대 추상미술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피터르 몬드리안(1872∼1944)이 남긴 말이다. 몬드리안은 추상을 통해 우리 시각 너머에 존재하는 본질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 근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추상화 1세대’ 작가들의 전시가 나란히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지난해 11월 시작한 유영국(1916∼2002)의 ‘절대와 자유’전이 3월 1일까지 계속되며, 국내 최고 메이저 화랑으로 꼽히는 현대화랑에서는 류경채(1920∼1995)의 ‘추상회화 1960∼1995’전이 이달 5일 시작돼 2월 5일까지 이어진다. 또 가나인사아트에서는 생존하는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 중 한 명인 윤명로(81)의 ‘그때와 지금’전이 지난 18일 개막해 3월 5일까지 열린다. 삼성미술관리움은 4∼8월 수화 김환기(1913∼1974) 회고전을 대대적으로 열 계획이다.
이미 단색화가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흐름으로 국제 화단에서 인정받고 있는 시점에 생존하는 윤명로를 제외하고는 단색화가로 통하는 이우환, 하종현, 박서보, 정창섭 등보다 앞선 세대인 김환기나 유영국, 류경채 등의 작품을 다시 조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영국은 김환기와 쌍벽을 이루는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이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자연을 아름다운 색채와 대담한 형태로 빚어낸 최고의 조형 감각을 지녀 미술계 내부에서는 그에 대해 ‘작가가 사랑하는 작가’로 존경을 보냈다. 그가 표현한 점, 선, 면, 형, 색에는 고향 울진의 바다와 산, 태양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에는 유영국의 전 생애 작품 100여 점과 자료 50여 점이 전시된다.
류경채 역시 김환기와 이름이 같이 거론되는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의 추상화는 김환기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서정성이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전시에는 초기의 자연주의적 화풍부터 말년의 기하학적 추상까지 류경채의 35년간 작품 활동을 총망라하는 회화 30여 점이 선보인다.
단색화가들과 동시대를 살면서도 그들과 달리 독자적으로 자신의 추상 세계를 확립해온 윤명로의 전시에서는 초기 작품들은 물론 유일하게 인물이 등장하는 ‘무제’(1956)와 싸리 빗자루를 붓 삼아 그린 ‘바람 부는 날’과 ‘고원에서’ 등 최근의 추상 연작도 만날 수 있다.
또 아직 일정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리움에서 준비 중인 김환기 회고전에는 그의 초기작부터 말기의 점화 추상까지 전 시기의 대표작을 소개할 뿐 아니라 그의 예술적 실험의 자취인 드로잉들,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편지와 사진까지 대거 공개된다. 리움 측은 전시에서 김환기 예술을 관통하는 전통론 및 민족주의 등의 문화적 담론과 함께 근대 일본 미술과의 관계 등 다층적 연구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미술관과 화랑에서 추상 1세대 작가들에 다시 주목하는 것에 대해 미술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미술 한류’에 기여했던 단색화에 대한 국제 화단에서의 열기가 차츰 사그라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즉 그에 따른 보완책으로 한국 현대 미술의 외연을 단색화를 넘어 그 이전 추상 1세대로 넓히기 위한 기획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같은 주장은 ‘단색화로 형성된 시장’ 크기를 추상 1세대 그림으로 더욱 키워 보자는, 즉 상업적인 측면만을 고려한 분석이다.
미술평론가 최열은 “대형 미술관이나 거대 화랑이 최근 잇달아 거장이나 원로들의 작품 전시를 여는 것은 상업적인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미술 애호가들의 취향도 반영하고 있다”며 “실험적 설치미술과 단색화 등 현대미술이 채워주지 못한 미술 애호가들의 바람, 즉 작품을 통해 근원적이면서도 본질적인 가치를 체험하고 싶다는 욕구를 구상적 추상에서 기하학적 추상을 아우르는 추상 1세대 거장들의 다양한 작품이 어느 정도 해결해 주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고 설명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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