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大 키워드’로 본 潘
亞 두번째 유엔 사무총장 올라
세계 사상가 100인 선정됐지만
서방 언론 ‘Nowhere…’ 비판
노무현, 潘 당선위해 동분서주
서거 후 ‘외면 - 배신자’ 논란
캠프선 ‘영어 섞어쓰기’ 난무해
半半행보 속 ‘정체성’ 의구심도
국제무대서 朴과 잦은 ‘썸’타기
캠프에 MB인사들 많아 입방아 潘
“내가 되면 정권 교체” 주장
‘한국인’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단군 이래 최대 사건이라 할 만하다. 글로벌 무대에서 일군 업적, 아시아적 가치를 실현하는 성실한 이미지, 정치 입문 전 기록한 높은 지지율 등이 반 전 총장을 국제사회의 존경받는 원로 대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길을 택하도록 한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불신받는 기성 정치권의 때가 묻지 않은 만큼 그에 대한 국민의 기대도 적지 않았고 본인의 야심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도상(圖上)에 없던 악재가 닥쳤다. 촛불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에 따른 조기 대선 국면은 그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이다. 엄동설한에 귀국해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정치 야생(野生)에 뛰어든 반 전 총장은 지지율 답보에 허덕이면서 낡은 보수 이미지와 싸우고 있다. 언제 악재가 튀어나올 지 모른다. 반 전 총장은 재임 시 할리우드 스타들 모임에 초청받은 일이 있다. 그는 이렇게 연설을 시작했다. “길에 누워 있던 시체가 다음 장면을 촬영하려고 벌떡 일어나는 일은 제 인생에는 없었습니다.” 반 전 총장 인생에서 연기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번 대권 무대는 특히 “한 번 더”를 허용하지 않는 전쟁터다. 반 전 총장이 국가 최고경영자로서의 덕목과 자질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 성공한 외교관
반 전 총장은 외무고시에 ‘차석’으로 합격하고 외교통상부 차관,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 대통령 외교보좌관, 외교통상부 장관에 오른 뒤 아시아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유엔 사무총장이 됐다. 2011년 말 총회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연임을 결의할 때 걸린 시간은 단 3초에 불과했다. 유엔 관료들의 경직된 사고, 총장으로서의 카리스마 부족 지적이 그를 괴롭혔지만 그래도 반 전 총장은 아이티 지진 같은 재난 현장에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 국제적 지원을 호소하는 현장 리더십을 보여줬다. 미얀마 자유화, 아랍의 봄, 코소보 독립 과정에서는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과시했다. 근검절약, 근면성실, 솔선수범, 청렴결백으로 묘사되는 아시아적 가치 실현에도 힘썼다.
반 전 총장 10년 임기 동안 최대 성과는 단연 파리기후변화협약이다. 온실가스 1·2위 배출국인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전략적 결단이 동력이 됐지만 반 총장의 설득이 없었으면 불가능이었을 것이란 평가가 많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 폴리시’는 ‘2016년 세계의 사상가 100인’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인 존 볼턴 전 유엔 대사는 “반 총장은 식량 안보 문제뿐 아니라 아랍의 봄 사태 당시 자유와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기 위해 자신의 본능을 따라 일했을 때가 최고였다”고 평가했다.
- 기름장어
적지 않은 업적에도 불구, 반 전 총장에 대한 서방 언론의 평가는 냉혹했다. ‘기름장어’(slippery eel)로 불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원래 ‘기름장어’는 나쁜 뜻이 아니다. 국제 외교가에서는 동서독 통일 주역으로 꼽히는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외무장관, 미·중 국교수립 초석을 다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기름장어 계보를 잇는 인물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반 전 총장을 공격하는 소재가 됐다. 2006년 12월 미국 ABC 방송과의 인터뷰 당시 반 총장은 방송 진행자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불법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지금 중요한 것은 이라크 국민의 장래”라고 답했다. 진행자가 “불법이냐 아니냐를 물었다”고 하자 반 총장은 다시 “신임 사무총장으로서 이라크 국민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답했다. 짜증이 난 진행자는 “왜 당신을 ‘기름장어’라 부르는지 알겠다”고 비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유엔의 투명인간”으로 묘사했고, 포린 폴리시는 “어디에도 없는 사람(Nowhere Man)”이라고 혹평했다. 반 전 총장 측은 “서방 언론의 비판은 화이트(white)의 유색인종(colored)에 대한 편견,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몰이해 등이 작용했지만 나중에 대부분 해소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 노무현의 그림자
반 전 총장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저서 ‘운명’에서 노무현 정부의 민정수석 시절 자신이 반 전 총장 일을 두 번 도우면서 유엔 사무총장의 길을 텄다고 술회했다. 한 번은 외교보좌관 추천(2003년) 때, 다른 한 번은 ‘김선일 피살사건’(2004년) 문책 불가 결론을 내릴 때였다. 문 전 대표의 문책 불가 건의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은 “누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사표를 반려했다. 노 전 대통령은 홍석현 주미 대사가 ‘삼성 엑스(X)파일 사건’으로 낙마한 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만들기에 진력했다. 정상외교와 순방 일정을 조정했고 오지 국가들을 찾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했다. 노 정부의 헌신 속에 반기문은 2007년 유엔 사무총장에 오를 수 있었다.
정권이 바뀌고 ‘박연차 게이트’로 검찰 수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 반 전 총장은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영상이나 서면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친문(친문재인) 진영은 “배신자 반기문”이라고 불렀다. 반 전 총장은 유족에게 여러 번 애도를 표하고 뉴욕 유엔 대표부에 마련된 빈소를 방문했다고 해명했다. 반 전 총장은 노 전 대통령 사망 2년 7개월 후인 2011년 12월 1일 비공개리에 봉하마을로 가 묘소에 처음 참배했다. 문 전 대표는 저서 ‘운명’에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데 기여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지만 최근 발간한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는 “(반 전 총장은) 기득권층의 특권을 누려왔던 분”이라고 비판했다. 반기문 외교보좌관 발탁과 관련한 다른 증언도 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 기자와 만나 “노무현 당선자 측근인 이광재가 찾아와 청와대 외교보좌관을 추천해 달라고 해서 내가 ‘반기문이 제일 낫다’고 천거했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의 추천이든 김 전 대표의 천거든 반 전 총장이 노 전 대통령의 ‘은혜’를 입은 것은 분명하다.
- 정치 아마추어
평소 대화 도중 ‘영어 단어 삽입하기’는 외교관들의 치유 불가 버릇 중 하나다. 캠프 모임에 갔던 한 인사는 기자에게 “참석자들이 말머리에, 도중에, 말끝마다 영어를 섞어 쓰더라”면서 “영 거슬렸다”고 말했다. 이런 생활 습성은 외교관으로는 프로적일 수 있지만 국민을 상대하는 정치인으로서는 아마추어적이다. 캠프뿐 아니라 반 전 총장 자체가 정치적 미성숙자다. 지방 순방 길에 위안부 합의 문제를 집요하게 질문한 기자들을 향해 “나쁜 X”이라고 한 것이 단적인 예다. 반 전 총장은 23일 KBS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기자들에게 감정적인 표현을 한 것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종인 전 대표는 지난 21일 저녁 반 전 총장과 독대한 뒤 “정치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는 말로 그를 평했다.
- 이명박근혜
반 전 총장은 ‘박근혜 사람’ 공격에 시달리고 그를 돕는 캠프는 ‘MB(이명박 전 대통령) 시즌2’라는 시선을 받고 있다. 사실 반 전 총장은 오랫동안 박 대통령과 ‘썸’을 탄 사이다. 국제무대에서의 잦은 만남 때문에 지난해 가을 이후엔 ‘박(근혜)·반(기문) 연대’라는 말이 회자했다.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은 “반 전 총장을 대하는 박 대통령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반 전 총장도 기회 있을 때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뉴욕 맨해튼에까지 새마을운동이 번지고 있다”고 화답했다. 캠프가 ‘지나치게’ MB 인사들로 둘러싸인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MB 재집권 전략’이라는 비판도 나오는 형국이다. 반 전 총장의 태도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바뀌었지만 ‘박·반 연대’의 잔상은 짙게 남아 있다. 반 전 총장은 “내가 대통령 되면 정치교체이자 정권교체”라고 주장하지만 ‘반기문 = 여권 후보’ 프레임은 쉽게 깨질 것 같지 않다. 반 전 총장이 여야와 제3지대를 넘나들며 정치인들을 접촉 중인 것에 대해서도 곳곳에서 “정체가 뭐냐”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 권력의지
반 전 총장은 미국 언론인 톰 플레이트가 쓴 ‘반기문과의 대화’에서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국내 정치에 전념할 분들은 저 말고도 많다”고 말했다. 귀국 후 대권 행보를 하고는 있지만 불분명한 어법, ‘두루 춘풍’ 형 태도는 그의 권력의지를 끊임없이 묻게 한다. 귀국 후 보여준 여당인 듯 야당인 듯한 행보, 보수인 듯 보수 아닌 어법도 그의 미래 구상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키운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이미 지난해부터 이렇게 말했다. “출마도 반 불출마도 반, 야당 올 것도 반 여당 갈 것도 반, 그래서 반 총장이다.” 반 전 총장은 “중도사퇴란 있을 수 없다”며 ‘아생연후살타’ 전법을 모색하겠다는 각오지만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허민 선임기자 minsk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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