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총지휘 증언에도
‘지시받은 적 없다’ 진술 반복
고령에 고강도 조사 등 부담
책임 넘기는 전략 택할수도
“난 핵심 아닌데 왜 추궁하나”
조윤선도 입장 바꿀 가능성
김기춘(78·사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화예술계 인사 1만 명의 ‘블랙리스트’ 작성을 총지휘했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김 전 실장이 24일 현재까지 의혹을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조사가 거듭될수록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나 관여 내용에 대해 조금씩 입을 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지시·관여 여부를 밝히지 않으면, ‘블랙리스트 기획→지시→작성·관리’에 관한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할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여든이 다된 고령에 ‘구속 상태’로 고강도 조사를 받는 ‘생전 겪어보지 못한’ 현 상황에 대한 부담도 그를 압박하는 한 요인이다.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같은 이유로 ‘김 전 실장이 시켜서 한 일’이라며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전 실장이 자신이 다 책임을 질 수도 있는 현 상황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조 전 장관은 특검 조사에서 ‘나는 핵심이 아닌데, 왜 나를 핵심으로 지목해 이렇게 추궁하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이날도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을 차례로 소환,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김 전 실장은 이날 조사에서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를 모르며, 정부 예산 지원과 관련한 결정은 통상업무 범위에 있다’고 주장하며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이 같은 김 전 실장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관련자 진술을 상당수 확보했다고 밝혔다. 유진룡(61) 전 문체부 장관은 전날 특검 참고인 조사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블랙리스트는 분명히 김 전 실장이 주도한 것”이라며 “김 전 실장 취임 후 그런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분이 수시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여러 번 관련된 지시를 하고 실제 적용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검 조사에서도 같은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덕(60) 전 문체부 장관도 ‘청와대가 만든 리스트를 실행하면서 진행 상황을 김 전 실장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고령에 구속 상태로 고강도 조사를 받는 김 전 실장이 결국 자신의 진술을 뒤집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사건 관련자 다수가 블랙리스트 ‘총지휘자’로 자신을 지목한 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박 대통령의 암묵적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관련된 일을 했다’고 책임을 넘기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실제 박 대통령이 지시·관여한 사실이 있다면, 김 전 실장이 끝까지 입을 다물기는 어려운 구도”라고 말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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