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 장승업, ‘화조 대련’. 종이에 수묵담채, (129×34㎝)
오원 장승업, ‘화조 대련’. 종이에 수묵담채, (129×34㎝)
- 닭 그림의 역사

동국세시기 “닭·호랑이 歲畵
연초 대문에 붙여 잡귀 쫓아”


닭 그림은 조선시대 민화의 일종인 세화(歲畵)에서 많이 발견된다. 세화는 새해를 축하하는 동시에 재앙을 막기 위해 대문 등에 붙인 그림. 악귀를 막아주는 호랑이와 닭, 집을 지키는 개, 화재를 막아주는 해태가 주로 등장한다.

조선 후기에 홍석모(1781∼1850)가 민간의 연중행사와 풍속들을 정리하고 설명한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정초에 닭 또는 호랑이의 그림을 세화로 사용하여 잡귀를 쫓았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세화는 연초에 한시적으로 사용하는 일회용 그림이어서 간단히 선묘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따질 성질의 그림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화인 닭 그림이 여러 상징과 결합하면서 장식과 감상용 그림으로 진화하게 된다. 이는 닭 볏이 관(冠)을 쓴 모습과 닮았고, 매일 알을 낳는 모습이 풍요를 뜻한다고 해 입신출세와 부귀공명(富貴功名)을 바라는 양반가에서 닭 그림에 관심을 보이며 비롯된 현상이다. 특히 과거를 앞둔 선비의 공부방에는 수탉이 목을 쳐들고 우는 모습이 등장하는 공명도(功名圖)가 많이 내걸렸다.

조선시대 닭 그림을 잘 그린 이는 변상벽(1730∼미상)이었다. 그는 닭과 고양이 그림을 잘 그려 ‘변고양이, 변닭씨’로도 불렸는데 변상벽이 그린 닭과 병아리 그림은 이 부문의 교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변상벽은 동물 세부 묘사의 달인이어서 세밀한 묘사력에 있어서는 오히려 단원 김홍도를 능가한다는 평가까지 있다. 변상벽 이전에는 조속(1595∼1668)이 신라 김알지의 탄생설화를 그린 금궤도(金櫃圖)에 흰 닭이 등장하고 풍속화가 신윤복(1758∼미상)과 긍제 김득신(1754∼1822)도 닭 그림을 남겼다.

조선 말기 천재 화가인 오원 장승업(1843∼1897)도 닭 그림을 그렸다. 얼마 전 에이옥션이 정유년 닭띠해를 맞아 진행한 경매에 장승업의 작품 ‘화조대련’이 출품돼 눈길을 끌었다. 방아깨비를 노려보는 수탉의 매서운 눈매가 살아있는 그림이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이중섭(1916∼1956)과 오당 안동숙(1922~2016) 등이 닭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은 1946년 원산사범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했으나 그림 제작에 지장이 있다며 곧 사직한 후 집에서 닭을 기르면서 닭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고 전해진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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