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윷점·오행점 유행
토정비결, 1910년 책자 나와
일제강점기 시절 널리 퍼져

점복의 백미는 주역·명리학
‘음양오행’에서 출발 공통점
주역 철학적·명리학 실용적


설날을 전후해 사람들은 한 해의 운세를 점쳐본다. 일관된 통계는 없으나 그동안 여러 조사로 미뤄 한국 성인 10명 중 8명은 점복(占卜)을 본 경험이 있고, 매년 정초에 10명 중 4명 가까이 한 해 신수를 본다. 상당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온라인 운세’를 이용한다.

그로 인해 소위 운세 시장은 10여 년 사이 급성장해 연간 2조∼3조 원 규모로 추정된다. 점복과 운세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어떤 것일까.

점복은 주술적 성격이 강하고 주역과 명리학은 동양의 오랜 학문적 토대를 갖고 있어 차원이 다르지만,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돼있다는 점에선 용도가 비슷하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 점복의 기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다. 한반도만 해도 3세기에 쓰인 ‘삼국지위서동이전’의 ‘부여국조(夫餘國條)’에 이미 “소 발굽으로 점을 친다”는 구절이 나온다.

조선 시대에는 왕실의 ‘관상감(觀象監)’에서 때마다 점복과 운세를 봤고, 1800년대 ‘동국세시기’ 등에 한 해 신수의 길흉을 점치는 윷점, 오행점 등이 민간에서 유행한 것으로 돼 있다. ‘토정비결(土亭秘訣)’은 1899년 ‘황성신문’에서 처음 명칭이 등장한다. 중국에서 전해져 이보다 훨씬 역사가 오랜 사주명리학이나 주역점은 사대부와 민초들 사이에서 면면히 이어졌고, 예나 지금이나 정초에 신년 운수를 보는 데 가장 많이 이용된다.

토정비결은 1910년쯤 책자로 나오기 시작해 일제강점기에 널리 퍼졌다. 역사학계에선 토정 이지함(1517∼1578)과 토정비결이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본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이지함 평전’에서 “‘토정비결’이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것으로 볼 때 이지함이 살았던 시기와 300여 년의 차이가 나고, 토정의 사후에 후손이 엮은 ‘토정유고’에 전혀 언급이 없으며, 조선 후기에 나온 ‘동국세시기’ 등 풍속 관련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이지함의 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학계에선 토정이 주역에 밝고 기인의 행적을 보인 유학자로, 나중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술서(術書)의 권위를 높이고자 민간에서 토정의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본다.

운세를 보는데 백미는 역사·철학적 배경을 갖는 주역과 사주명리학이다. 둘 다 동양사상의 기본인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 출발하지만 주역은 팔괘(八卦)를 조합한 64괘로, 사주명리학은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를 기본으로 한 육십갑자(六十甲子)로 인간을 설명하고 예측한다. 주역은 ‘지금 이 순간’에 선택된 괘를 통해 점을 보지만, 명리학은 생년·생월·생일·생시를 네 개의 기둥(四柱)으로 놓고 길흉화복을 살핀다.

조철선 ㈜전략시티 대표는 주역과 명리학에 대해 ‘종교·철학’과 ‘실용·처세’의 차이로 구분한다. 서울대 미생물학과에서 학·석사를 마친 그는 국내 굴지 기업들의 기획파트에서 일했고 사업에도 손을 댔지만 번번이 좌절을 겪은 뒤 자신의 운명을 알고자 동서 철학과 주역, 명리학을 깊이 있게 공부했다. 지금은 경영전략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자신의 경험과 공부에서 배운 바를 ‘전략가, 운명을 묻다’(지혜로울자유)라는 책으로 펴낸 조 대표의 조언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조 대표는 “사주명리학은 운명을 길흉화복의 관점에서 보고, 흉운(凶運)이 오면 납작 엎드리고 길운(吉運)이 오면 잡으라고 말합니다. 반면 주역에서 길흉화복은 단지 변화하는 운명적인 상황일 뿐이지요. 막힘의 운세지만 마땅히 가야 할 길이라면 지조 있게 가라고 합니다. 또 흉운의 막판엔 반드시 반전이 있고, 길운의 막판에도 꼭 기울어짐이 시작됩니다. 명리학은 실용적 측면, 주역은 철학적 느낌이 더 강합니다”라고 설명한다.

조 대표는 점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주역과 명리학은 기본적으로 통계적 학문이고, 차원은 다르지만 무속인도 내담자의 정보를 잘 알면 미래를 예측할 확률이 높습니다. 보통 점을 보러 가서 ‘잘 맞히나 보자’는 식으로 대하면 신뢰할만한 예측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마음을 열고 조언을 듣는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운세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 조 대표는 운명은 자신을 완성하는 과정이며, 그게 주역이나 명리학에서 배워야 할 점이라고 말한다.

“저는 고교 3학년 때 모의고사에서 전국 4등을 할 정도여서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계속된 삶의 좌절로 나중엔 극단적인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이제 50대에 이르러서야 어렴풋이나마 제 운명을 알게 됐고, 제 삶이 바로 수행임을 깨달았습니다. 운명의 길·흉을 나에게 주어진 맞춤형 프로그램이라고 보고 거기에 순응하고 배운다면 오히려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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