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봉 화혜장이 모란꽃을 수놓아 부귀를 기원하는 ‘목단수혜’를 두 손으로 들어 보이고 있다. 수혜는 신 전체에 아름다운 무늬를 수놓은 신으로 흔히 꽃신이라고 부른다.
황해봉 화혜장이 모란꽃을 수놓아 부귀를 기원하는 ‘목단수혜’를 두 손으로 들어 보이고 있다. 수혜는 신 전체에 아름다운 무늬를 수놓은 신으로 흔히 꽃신이라고 부른다.

5代째 가업 잇는 황해봉 화혜장

날렵하게 올라간 코, 형형색색 화려한 자수, 이렇듯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을 거쳐 완성된 꽃신에는 고고한 아름다움이 서려 있다. 설을 앞두고 우리의 전통신인 꽃신을 5대째 만드는 황해봉(65) 화혜(靴鞋)장의 작업실을 찾았다. 고즈넉한 방에 고운 꽃신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여아혜, 돌잡이 여자아이들이 신던 신이다.
여아혜, 돌잡이 여자아이들이 신던 신이다.


화혜장은 목이 있는 신발인 화(靴)와 목이 없는 신발인 혜(鞋)를 제작하는 장인을 통칭해 붙인 이름으로, 순우리말로는 ‘갖바치’로 부른다. 황해봉 씨는 16세부터 할아버지 어깨너머로 화혜 기술을 배워 5대째 200여 년 가업의 맥을 잇고 있다. 1983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화혜장의 맥이 끊길 뻔했지만, 황 선생은 할아버지에게 전수 받은 기술과 옛 문헌, 복식학자의 조언을 통해 다양한 화혜를 재현하는 데 성공해 중요무형문화재가 됐다.

고운 꽃신들을 가지런히 놓고 황해봉 장인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고운 꽃신들을 가지런히 놓고 황해봉 장인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40년을 넘게 해도 송곳에 찔리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신발 재료인 소가죽을 뚫다 손에 생긴 상처를 보여주며 수줍게 웃는다. 꽃신을 만들려면 우선 자수가 놓인 비단을 가죽에 붙이고 바느질을 한다. 처마 지붕처럼 둥글게 올라간 신발코와 밑창을 만든 다음에는 백비마름질, 신골박기 등 꽃신의 멋을 살리기 위해 일흔 번이 넘는 손질을 더 해야 한다. 이렇게 꽃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고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기 때문에 장인의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늘 박여 있다.

청석. 왕후가 면복을 입었을 때 신던 신이다. 순종황후가 신었던 신을 복원한 것이다.
청석. 왕후가 면복을 입었을 때 신던 신이다. 순종황후가 신었던 신을 복원한 것이다.


완성된 꽃신을 애지중지 두 손으로 받쳐 든 모습을 보니 문득 지난 남북이산가족 행사 때 우리 측 최고령인 구상연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2015년 10월 금강산에서 열린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앞두고 98세 구상연 할아버지는 북측에 있는 두 딸에게 줄 꽃신을 품에서 꺼내 기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네 살, 일곱 살배기 어린 딸들에게 고추를 팔아 꽃신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65년을 기다리신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에 들린 꽃신, 그것은 못다 한 사랑에 대한 애절함이었다.



“어여쁜 꽃신에는 인생 내내 꽃길 밟고 사는 삶이 되라는 축복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옛날 딸을 시집보낼 때 고이 보관하던 꽃신을 신겨주던 친정엄마의 마음은 이런 간절함이었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누이동생에게 꽃신을 사주던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꽃신을 사주던 그 마음처럼, 이번 설에는 평소에는 못하던 가족 간의 사랑을 표현해야겠다고 마음먹어본다.

사진·글 = 김선규 기자 uf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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