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선

31년간 결혼생활을 해오던 임모(여·61) 씨는 지난해 10월 남편과 ‘졸혼’(卒婚·결혼을 졸업하는 것)에 합의했다.

딸과 아들을 모두 결혼시킨 뒤 남편과 협의 끝에 2주에 한 번씩만 보기로 한 것.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작가의 꿈을 꿨지만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아야 했던 임 씨는 현재 남편과 떨어져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임 씨는 “남편이 싫어서 따로 사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100세 시대에 30년을 넘게 같이 살아온 만큼 남은 시간은 내 시간을 갖고 각자 할 일을 하며 부부 관계를 유지해가고 싶다”고 말했다. 임 씨는 “평소 나를 위한 적금을 들어놓기도 했고 남편과 자녀들이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면서 응원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배우 백일섭(72) 씨도 한 종합편성채널 방송에 출연해 졸혼을 한 사연을 털어놔 화제가 된 바 있다. 1남 1녀를 두고 40여 년 동안 결혼생활을 해온 그는 “이혼이 아니라 결혼을 졸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최근 홀로 고향인 전남 여수로 내려가 바다낚시를 즐기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싱글 라이프를 시작했지만 “오히려 자유롭고 (불필요한) 생각이 더 없어졌다”며 “나는 혼자다. 이게 좋은 걸 느끼고 있다”고 속내를 밝혔다. 하지만 아들 내외에게는 “나이가 들면 나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100세 시대를 맞아 배우자와 법적으로 혼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따로 떨어져 사는 졸혼을 선택하는 노년 혹은 중장년층 부부가 늘고 있다.

이처럼 졸혼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결혼 문화가 등장한 것은 이른바 100세 시대로 불릴 만큼 기대 수명이 길어진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20∼30년 정도였던 결혼생활이 길게는 70년까지 늘어난다면 이에 대한 부담감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직장 생활을 은퇴한 뒤 부부가 하루 종일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면서 갈등을 빚는 사례도 적지 않다.

2015년 생명표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한 남자는 79세, 여자는 85.2세까지 살 수 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아예 따로 거주하면서 생활하다가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만 만나거나, 한집에 살아도 독립적으로 지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최근 한 결혼정보회사가 회원 5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졸혼에 대한 의식조사에서 응답자의 57%가 ‘졸혼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가장 많은 응답자가 그 이유로 ‘결혼생활 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노후에라도 하고 싶어서’(57%)라는 항목을 꼽았다.

물론 졸혼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도 만만치 않다. “이럴 거면 결혼은 무엇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말이 졸혼이지 사실상 부부 관계가 끝난 것과 뭐가 다르냐” 등의 지적이 나온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은 31일 “졸혼이란 이름만 안 붙었을 뿐 별거나 쇼윈도 부부처럼 이와 비슷한 형태는 과거에도 있었다”며 “솔직히 부부가 함께 살면서도 얼마든지 서로 존중하고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만큼 너무 확산은 안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 소장은 “불화를 졸혼으로 미화하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교수는 “여전히 이혼은 심리적 부담이 큰 우리나라 상황에서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을 덜며 자신을 위해 여생을 살 수 있는 점이 졸혼을 선호하는 요인으로 꼽힌다”고 분석했다.

최준영·박효목 기자 cjy324@munhwa.com

관련기사

최준영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