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드북’의 한 장면.
뮤지컬 ‘레드북’의 한 장면.
“난 슬퍼질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해.” 오랜만에 멋진 여자를 만났다. 이름은 안나. 최근 대학로를 휩쓴 창작 뮤지컬 ‘레드북’의 주인공이다. 거두절미 한정석(작가)-이선영(작곡가) 콤비에게 박수를 보낸다. 뮤지컬 취재를 하며 내내 불만인 게 바로 여성 캐릭터였기 때문. 도대체 왜, 뮤지컬 여주인공은 하나같이 평면적일까. 역량이 아니라 배역(캐릭터)의 문제다. 무용, 성악, 연기 등 탄탄한 기초예술을 바탕으로 스타성까지 갖춘 여배우들이 대부분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었다. 너무 기구해서 구원자(남자)가 있어야 하거나, 지나치게 청순하거나, 공주거나 왕비거나, 혹은 있으나 마나 거나. 한마디로 ‘안’ 멋졌다. TV에 넘치는 ‘신데렐라’나 ‘캔디’처럼.

상대적으로 남주인공은 입체적이고 다양하다. 선과 악을 오가고(지킬 앤드 하이드), 가면을 썼지만 여주인공의 재능을 끌어내고(오페라의 유령), 삶이 고통스러워도 인류애를 잃지 않는다(레미제라블). 보조적인 여성에 비해 남성들은 이야기를 실제로 이끌어나가는 ‘진짜’ 주인공이었다. 여성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준 ‘도깨비’는 잘되고, 여성이 판타지가 된 ‘푸른 바다의 전설’은 좀 덜 된 이유에 주 시청자가 20∼50대 여성이라는 배경이 있듯, 공연도 여성 관객에 맞춰 멋진 남성을 앞세우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이해한다. 오죽하면 꽃미남 두 명이면 ‘충분한’ 2인극이 대학로 흥행 공식이 됐겠는가.

안나는 여자라서 안 되는 게 더 많았던 19세기 영국에서 왔다. 세상이 신사와 숙녀, 그리고 ‘나머지’로 구분되던 시절, 안나는 ‘감히’ 야한 소설을 쓴다. 약혼자에게 첫 경험을 고백했다 파혼당하고, 여자를 부속품으로 여기는 ‘신사’들에게 매번 덤벼들어 이상한 여자로 찍히지만 야한 소설 레드북을 발간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다. 그러다 ‘야한 소설을 쓴 여자’라는 죄목으로 법정에 선다. “난 뭐지?”라고 자문하던 안나는 과연 어떻게 될까. 막 초연을 마친 작품이니, 결말은 생략. 안나의 노래 중 한 구절만 읊는다. “당연한 것이 당연해질 때까지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어요.” 어딘지 이 시대 모든 ‘안나’들을 위한 응원가 같다.

레드북은 한국예술위원회 창작 산실 우수작으로 지난달 처음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입소문을 타면서 발 디딜 틈 없이 객석이 꽉 들어찼다. 아무도 몰랐으나, 공연 팬이라면 이제 모두 안나를 안다. 당찬 스토리, 재치 넘치는 가사, 고정관념이 싹 씻긴 대사.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국 창작 뮤지컬 사에 한 획을 그을 가장 주체적이고, 매력적인, 그래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여주인공이 탄생했다는 점. 이게 시범공연이라니. 재공연은 분명 피케팅(피 튀기는 티케팅)이다.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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