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대부분 초·중·고 교과서에는 5·16을 군사정변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용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2015년 6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무총리 후보자로서 “5·16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내놓은 입장이다. 군사정변이나 쿠데타라고 정의하면 쉽게 넘어갈 일인데 황 권한대행은 끝까지 자신의 입으로 5·16을 쿠데타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얄미울 정도로 교묘하게 야당의 공세를 빠져나간 그의 논리에 박근혜 대통령은 상당히 흡족해했다고 한다.

단어, 문장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그가 지난달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말에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지금은’이라는 토를 달았다. 단순 논리로, 지금은 아니고 다음에는 생각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난달 25일 문화일보가 보도한 여론조사에서 황 권한대행은 7.9%로 대선 지지율 4위를 기록,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번 설 연휴 동안 민심을 전하는 의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확실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기대보다는 황 권한대행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황 권한대행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최근까지 소화한 일정만 100건이 넘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권한대행을 한 고건 전 총리의 2배다. 시급히 챙겨야 할 일정보다는 노인복지시설, 어린이집과 같은 과시성 행사가 많고 간담회도 10여 차례로 고 전 총리의 3배다. 새누리당은 아예 노골적이다. 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30일 황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설과 관련해 “새누리당은 이 문제를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주의 깊게 본다”면서 “본인이 혹시 결단하고 대선후보가 된다면 우리 당으로선 싫어할 일이 아니다”고 부추겼다. 대선후보가 없는 ‘불임정당’이 될 처지에 있는 새누리당으로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현직에 있으면서 ‘국가보안법 해설’을 펴내 ‘Mr. 국보법’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통합진보당 해산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뼛속까지 보수’라는 상품성이 높다. 반 전 총장을 밀고 있는 정진석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SNS에 “황교안 대선 출마는 미친 짓”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것도 그만큼 위협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 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가면 웬만한 굳은 심지가 아니면 흔들리게 돼 있다. 그러나 황 권한대행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달리 지금은 그야말로 나라가 안팎으로 누란지위(累卵之危) 상황이다. 검찰과 특검 수사를 통해 밝혀진 국정 농단의 상흔이 너무나 깊고 넓다. 법치와 민주주의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고 차기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최대한 혼란 없이 넘겨야 할 막중한 임무가 있다. 벌써 장외에서는 탄핵 찬성 대 반대 집회가 격화되는 조짐이다. 각자 다른 입장에서 두 명의 자살자도 나왔다. 자칫 탄핵 정국에 국가가 혼란 상황으로 빠져들어 간다면 대한민국은 그냥 주저앉고 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해 국제 관계를 통째로 흔들어 놓고 있어 한반도 안보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

황 권한대행 본인도 박 정부에서 법무장관에 이어 총리로 있으면서 최순실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국내외 위기를 잘 극복하고 나아가 차기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하는 임무도 빼놓을 수 없다. 심판이 갑자기 선수로 뛰겠다고 하면 여러 시비가 일 수 있다.

황 권한대행은 지난 2011년 부산고검 검사장을 끝으로 퇴임하면서 퇴임사에 박순길 시인의 시 ‘준비’를 인용했다. ‘배는 뜨기 위해/ 제 속을 다 파낸다/ 너는 뜨기 위해/ 속을 다 파내 본 적이 있는가//변명은 하지 마라/ 운이 있다고 하나/ 그건/ 준비된 자의 덤일 뿐이다.’ 지금 황 권한대행의 처지와 맞물려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다. 대한민국을 다시 살리기 위해 지금 황 권한대행에게 필요한 것은 사심 없이 모든 것을 다 파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국민이 부를 날도 있을 것이다. 모두 대권을 향해 불나방처럼 몰려갈 때 황 권한대행이라도 국정의 중심을 잡아주기를 바란다.
이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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