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태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 김민석입니다. 선생님이 계시는 중학교를 떠난 지도 벌써 1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한 중학교 2학년. 저에게는 누구보다도 혼란과 방황으로 가득한 시기였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그곳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를 다닌 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이른 사춘기 시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느 나라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지, 또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가끔 저에게 일본인이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저조차도 확신할 수 없어 부모님께도 몇 번이나 “일본에서 태어나면 다 일본 사람이야”라고 물어보곤 했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다는 것이 큰 혼란으로 느껴졌습니다. 다른 제 또래 친구들은 하지 않아도 될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야 한다는 것이 제게는 그저 짜증 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저는 새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도 안 돼 선생님들의 특별 레이더망 1순위가 되었습니다. 딱히 나쁜 행동을 하고 다니진 않았지만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의 문을 닫고 늘 시큰둥하게,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던 탓이겠지요. 그런 제가 걱정됐는지 선생님은 남아서 상담이나 하자며 집에 가려던 저의 팔을 붙잡으셨습니다.
선생님의 털털한 아저씨 인상에 끌렸기 때문일까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던 제 고민에 누군가 귀 기울여준다는 것에 감동을 받아서였을까요, 그전까진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이야기를 모두 쏟아냈습니다.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많은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원했던 가슴 시원한 조언을 해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저를 우리 민석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도, 어느 나라에서도, 어느 학교에서도 쉽사리 머물 곳을 찾을 수 없었던 저에게 선생님의 ‘우리’라는 따뜻한 울림은 제게도 속할 자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그 덕분에 내성적이고 어둡던 성격도 조금씩 활발하게 변했고, 콤플렉스 같던 해외 경력도 제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편지는 그렇게 늘 ‘삐딱선’을 타던 제게도 국제아동 상담사라는 꿈이 생겼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외국에 살다 와서 한국에 적응하기 힘든 아이들, 자기가 누군지 몰라 방황하는 아이들을 제가 다독여 주고 싶습니다. 김경태 은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문화일보 후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주최
'고맙습니다, 선생님' 감사편지 쓰기 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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