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 포기 이후 보수 정치권이 더욱 지리멸렬 상태에 접어들었다. 급기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대항 주자로 내세우자는 주장까지 확산되고 있다. 자칫 원칙도, 명분도, 국민 신뢰도 잃어버릴 판이다. 어렵고 복잡할수록 편법에 의존하기보다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보수의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 여당이 진력(盡力)해야 할 일은 집권세력으로서 안보·경제 등 주요 국정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면서, 특히 민생(民生)에 집중하는 일이다.

올들어 ‘월급 빼고 다 올랐다’고 할 정도이고, 졸업 시즌을 맞아 수십만의 젊은이가 사회로 나오지만 직장을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배추와 양배추 가격이 평년보다 84%, 78% 인상되는 등 생활물가의 고삐가 풀렸다. 정부가 지난해 말 비상경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 공공요금 등 민생 물가를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별효과가 없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환율전쟁’으로 기업들의 불안감이 더 커졌다. 올 경제성장률이 급기야 1%대가 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럴수록 보수 정치세력은 ‘책임’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면 무작정 대선전에 올인하다시피 하는 야권과 차별화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정농단’에 따른 것일 뿐, 2012년 대선에서 여당이 내세웠던 국정 기조에 관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황교안 띄우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점이 있다. 황 대행 지지율이 급등하는 것은 대안 부재에 따른 현상일 뿐이다. 실제로 대선에 나선다면 과거 법무장관 청문회 때 나왔던 문제점들이 증폭될 것이고 ‘제2 반기문’이 될 우려도 있다. 선거를 관리해야 할 행정 책임자가 직접 뛰는 것도 원칙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새누리당의 다급한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차라리 한발 물러나 민생에 집중하면서, 주자 차원이 아니라 정치세력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대선은 해보나 마나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부가 최종 결정될 때까지 선거전을 유보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그러면 황 대행 문제도 자연스레 풀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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