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삼청동길부터 가로수길, 경리단길까지, 특색 있는 길들이 서울을 대표하고 있지만 누군가 나에게 가장 한국적인 분위기를 가진 서울의 길을 묻는다면 국악길이라고도 불리는 돈화문로를 추천하고 싶다. 돈화문로가 국악길로 불리게 된 이유는 현재 국립국악고등학교의 전신인 ‘국악사양성소’가 운니동에 1955년부터 1967년까지 있었고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을 가르치던 국내 최초의 민간 음악 교육기관인 ‘조선정악전습소’와 같은 국악 교육기관이 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국악길은 비교적 낮은 건물들과 잘 가꾸어진 가로수, 적당한 폭의 보도를 갖추고 있어 사람들이 걷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길을 따라 걸으면 전통악기점과 공예점이 곳곳에 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운이 좋으면 국악 연습실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가야금 산조나 대금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큰길 안쪽으로는 여러 채의 한옥들이 카페나 음식점으로 단장하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데 종묘와 창덕궁을 연결하는 순라길과 함께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 서울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길 끝으로 보이는 돈화문은 우리가 한국에 살고 있음을 인식시켜 주는 반가움이다.
그동안 국악길에는 제대로 된 국악 공연장이 없어서 이곳에서 쉽게 국악 공연을 접하기는 사실 어려웠다. 하지만 국악길에 국악전용 공연장을 마련하기 위한 서울시의 노력은 지난해 9월, 마침내 열매를 맺었다. 국악길이 시작되는 돈화문 앞 주유소를 없애고 그 자리에 전문국악 공연장인 서울돈화문국악당을 열었다. 돈화문국악당은 한옥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문화재와 어울리지 않았던 주유소가 없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국악당과 나란히 돈화문을 바라보는 길 건너에도 역시 주유소를 철거하고 전시장 공사가 한창이다. 이 건물 또한 한옥의 형태를 갖춘다고 하니 창덕궁 앞의 분위기가 더 멋스러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개관 소식을 듣고 찾아간 돈화문국악당은 공연장이 있음 직한 건물은 보이지 않고 단층의 고즈넉한 한옥 카페만이 눈에 들어온다. 안내하는 사람에게 물으니 공연장은 지하에 있다고 한다. 부피가 큰 공연장을 지하로 배치하니 땅 위로 나온 건물은 단층으로 처리할 수 있었고 창덕궁의 경관을 가리지 않을 수 있었다. 솟을대문 입구로 들어서면 한옥으로 둘러싸인 마당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야외공연과 행사를 한다. 공연이 없는 한적한 분위기의 마당을 접하니 문밖의 시끄러운 도시와는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가깝고 친숙한 거리에 작지만 전문적인 공연장이 있어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느껴진다.
돈화문국악당의 공연장은 자연음향을 추구하고 있는데 자연음향이라는 것은 마이크나 전자장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악기와 사람이 내는 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을 말한다고 한다. 전자장치가 없었던 옛 방식 그대로 우리의 전통음악을 들려주려는 시도인 것이다. 국악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자연음향의 음악전달 방식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마이크를 쓰지 않기 때문에 공연장의 규모는 적정한 청음을 고려하여 140석으로 제한하였다고 한다. 또한 공연장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창호 문살의 구조가 음을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데 적절히 작용하여 가장 듣기 좋은 음향을 만든다고 하니 더 새롭고 반갑다. 개관 이후 돈화문국악당의 공연을 살펴보면 전통적인 공연에 그치지 않고 전통음식과 연계한 ‘국악의 맛’이라는 실험적인 시도를 포함해서 시민들과 친숙해지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돈화문국악당이 반가운 것은 수준 있는 국악전용 공연장이 새로 생겼다는 것에 있지 않다. 국립국악원이나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처럼 심리적 거리감이 느껴졌던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지나가다 마음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친근한 거리에 전통음악을 공연하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 더 반갑다. 반가운 마음으로 가야금 산조공연을 보고 집으로 가기 위해 순라길을 걷는 내 어깨가 바람에 넘실댄 것은 총총한 가로등 불빛 때문이었을까?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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