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창전동 공민왕 사당

고려 공민왕(1330∼1374)은 집권 전반기와 후반기가 뚜렷이 비교되는 비운의 왕이다. 그는 고려 충숙왕과 공원왕후 홍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349년 원나라 위왕의 딸 노국대장공주와 결혼한 후 원나라 순제에 의해 1351년 고려 31대 왕에 올랐다.

집권 초기 공민왕은 무신정권 시대(1170∼1270)를 거치며 잃어버린 왕권을 되찾고 약 80년간 고려를 지배해 온 원나라를 멀리하며 국가의 자주성을 되찾기 위한 개혁 정책을 펼쳤다. 친원파(親元派) 기(奇)씨 일족을 제거하고 몽골식인 변발과 호복(胡服)을 금지하며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했다.

그러나 1359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다시 원나라와 손을 잡고, 1365년 왕비 노국대장공주가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자 슬픔에 빠진 나머지 나랏일을 승려 신돈에게 맡기면서 국정이 어지러워졌다. 결국 1374년 45세의 나이에 홍륜, 한안 등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능은 현릉으로 북한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다.

공민왕 사당(등록문화재 제231호·사진)은 조선 초기 건립됐다. 사당이 위치한 서울 마포구 창전동 42-17번지 일대는 한강의 서강 나루와 인접한 지리적 이점으로 농산물 집산지인 광흥창(廣興倉)이 있던 곳이다. 서강 나루 곡물 창고에서 일하던 관리인의 꿈에 공민왕이 나타나 이곳에 사당을 짓고 매년 제사를 지낼 것을 계시한 데 따라 조정에서 공민왕을 기리는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6·25 전쟁 때 파괴된 것을 전쟁 직후 주민들이 새로 건축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당 건물은 전면이 3칸인 데 비해 2칸인 것이 특징이다. 민간 전통 건축술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자료다.

사당 안과 밖에 있는 다섯 그루의 서울시 지정 보호수도 눈여겨볼 만하다. 안에 있는 두 그루는 수령 200년이 넘은 느티나무다. 사당 밖 입구 좌우에 있는 보호수 두 그루는 수령 180년 안팎의 회화나무다. 다른 한 그루는 바로 옆 서강쌍용예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 수령 280년, 나무 둘레 508㎝로 가장 크다.

공민왕 사당 제례는 지금도 마포문화원의 주관 아래 매년 음력 10월 1일 치러지고 있다. 제례는 크게 신(神)을 맞이하고, 신이 즐기고, 신을 보내는 절차 등 11가지 단계로 이뤄진다. 첫 번째는 재계(齋戒). 제례가 있기 전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두 번째, 취위(就位). 제관들이 미리 정해진 자리로 가서 선다. 세 번째, 신관례(晨관禮). 신을 맞이하는 예절로, 향을 피우고 예물로 폐를 바친다. 네 번째, 천조례(薦俎禮). 제상에 싸놓은 복지를 벗기고 신위 앞에 올린다. 다섯 번째, 초헌례(初獻禮). 초헌관이 신에게 첫잔을 올린다. 여섯 번째, 아헌례(亞獻禮)는 두 번째 잔, 일곱 번째, 종헌례(終獻禮)는 세 번째 잔을 올리는 것이다. 여덟 번째, 음복례(飮福禮). 초헌관이 술과 음식을 먹어 조상신이 주는 복을 받는다. 아홉 번째, 철변두(撤변豆). 제례에 쓰인 제물을 거둬들인다. 열 번째, 송신례(送神禮). 신을 보낸다. 열한 번째, 망료례(望燎禮). 제례의 마지막 절차로 제례에 쓰인 축문과 폐를 태운다. 종묘대제와 같은 형식이다.

공민왕 사당은 아파트가 늘어선 창전동 한복판에 있다.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1번 출구로 나와서 서강쌍용예가아파트 중간문으로 가로질러 가면 가깝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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