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모 성균관대 교수 경제학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승려 브라만, 귀족 크샤트리아, 평민 바이샤, 천민계층 수드라가 있다. 카스트는 신분 이동의 역동성을 떨어뜨려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제도로 지적받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카스트 노동시장에 비유하는 사람도 많다. 브라만은 공공기관 정규직으로서 높은 고용 안정을 누리고 사회적 영향력도 큰 일자리다. 서울 노량진의 학원가에서 청년들이 공공기관 취업을 위해 애쓰는 것도 브라만 직업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크샤트리아 일자리는 대기업·정규직이다. 브라만 같은 고용 안정은 보장되지 않지만 높은 연봉을 누릴 수 있다. 수드라는 중소기업·비정규직 일자리로서 노동시장의 하위계층에 해당한다.

12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10.7%로 전년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크샤트리아(대기업·정규직) 자리는 어느 때보다 적고, 용문(龍門)을 뚫고 진입하려는 청년들은 어느 때보다 많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내 청년층(15~29세) 비중을 살펴보면 지난해 3월 기준 ‘대기업·정규직’의 경우 주고용층 76.7%, 청년층 15.3%, 고령층 8.0% 순으로 나타난다. 청년층의 경우 2008년 20%대를 기록한 이래 현 15%대로 줄곧 줄어 왔다. 반면, 청년 인구구조를 보면 이명박 정부 때는 20~24세 청년 인구가 60만 명 정도였으나, 박 정부에서는 10만 명 더 많은 70만 명을 웃돈다.

이런 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노동시장의 칸막이를 없애고 공정경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공공부문처럼 안정된 일자리로 청년들이 몰려가는 것은 경제와 노동시장의 미래가 어둡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기업 투자 환경을 촉진하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고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 일자리 파이를 키워야 하며, 노동시장 이동성을 높여 경제의 역동성을 높여야 한다. 청년들이 창업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도록 패자부활의 제도를 견고하게 설계해 줘야 하며, 불필요한 스펙에 따라 청년들의 초기 신분이 결정되고 평생 유지되는 불공정한 관행을 파괴해야 한다. 건강한 중견기업 생태계가 조성돼 양질의 청년 일자리들이 쏟아지도록 대·중소기업 상생과 공정거래의 관행도 정착돼야 한다. 노동시장의 미스 매치를 해소하기 위해선 직업훈련 체계를 강화하고 고용 서비스 체계를 개혁하는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또한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대선 주자 가운데 그 누구도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일자리 창출 방향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유력 대선 주자는 공공부문의 일자리에 세금을 들여 청년들을 확대 채용하겠다고 한다. 공공 인프라와 재정 여건이 허락하는 필요한 공공 일자리가 있지만, 경제정책에 해당하는 청년 일자리를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이는 브라만 자리를 몇 개 더 늘려서 바이샤, 수드라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술 더 떠서 청년들에게 청년수당, 배당을 나눠주겠다는 공약은 수드라에게 보상금을 주어 일시적으로 그들의 고단함을 위로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전문성에 기반한 비전과 공약은 보이지 않고 일자리를 잠식하는 단기 처방만을 남발하는 작금의 대선 레이스에서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국민의 혈세가 낭비될 게 자명하다. 정치권의 교언영색(巧言令色)을 막기 위해서라도 눈속임 청년 일자리 공약에 대해 국민은 경계해야 한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