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前 외교부 차관

미국과 일본의 정상회담이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일본을 안보 ‘무임승차국’으로 규정하고 취임 후에도 중국·독일과 함께 환율조작국에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기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외교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정상회담을 준비했을 것이다. 일단 공식적인 결과만 놓고 볼 때 이번 회담은 안보에선 아베 총리가, 경제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판정승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미·일 정상회담 개최 후 배포된 공동성명은 미·일 동맹을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주춧돌로 규정하고, 센카쿠 열도가 미·일 안보조약 제5조의 적용 대상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일본 측이 안도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70억 달러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를 통해 미국에 7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갔음에도 미·일 간에 ‘공정무역’을 추구한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공동성명에 ‘양국 정상은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 원칙을 바탕으로 경제 관계를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함으로써 미국 입장에서(자유무역 원칙을 지지하되) 공정성을 제고한다는 명분으로 대일 무역역조 시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한국 입장에서도 이번 미·일 정상회담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리웠다.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은 ‘매우 매우 높은 우선순위(very, very high priority)’를 차지한다고 한 것은 고무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외교안보 최상위 어젠다로 올려놓진 않더라도 최소한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처럼 ‘전략적 인내’라는 수사 뒤에서 적극적 행동을 기피하는 모습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유롭고 공정하며 상호적인 무역관계’를 강조한 것은 한·미 경제 관계에서도 공정무역과 상호주의를 명분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환율정책 등을 양국 간 현안으로 제기할 가능성을 키웠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의 ‘성공’은 양국의 전략적 셈법이 일치한 결과다. 공동성명 첫 문단에 ‘아·태지역의 안보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운데 미국은 이 지역 (군사)주둔을 강화하고, 일본은 동맹의 역할과 책임을 확대하기로 했다’는 점이 강조됐다. 중국을 견제하는 데 미·일이 힘을 합치고, 일본이 더 큰 안보(安保)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다. 동맹은 단순히 주둔군 ‘비용’ 증감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과 ‘책임’의 문제가 됐다. 일본의 아베 내각은 동맹 내 일본의 역할 문제와 ‘적극적 평화주의’를 연결시켜 평화헌법 개정과 일본의 ‘정상국가화’ 과정에 박차를 가하고,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지지해주면서 역내 전략적 부담을 덜고 경제적 이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일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는 연합전선을 구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미·중에 대한 등거리 외교를 하는 것도 위험하다. 외교안보 정책의 중심축을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에 두고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면서 동아시아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한국의 역할을 점차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12일 오전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 시험발사를 한 것은 사드(THAAD) 배치의 필요성을 재확인시켜 줬다. 우리는 중국이 한·미·일과 함께 북핵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사드 배치 필요성을 낮추는 길임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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