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목표가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면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는 답이 아니다. 대통령이 장악한 검찰만 하나에서 둘로 늘어날 뿐이다. 공수처가 생기면 현재 검찰의 문제는 그대로 남고 공직자 비리 수사가 제대로 안 되는 심각한 문제만 추가될 것이다. 환자 수술에는 정확한 진단과 제대로 된 수술 방법이 필요하다. 검찰 개혁도 마찬가지다. 검찰 개혁의 요체는 정의롭지 못한 검찰을 정의롭게 만드는 것인데, 공수처는 거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광우병 관련 ‘PD 수첩’ 사건,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 미네르바 사건 등 그동안 검찰의 개혁이 필요한 사례로 거론된 사건 대부분이 공수처의 수사 대상조차 아니다.
세계적으로 입법례가 없는 공수처 신설은 검증 안 된 신약을 환자에게 투여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부정부패 전담 기구를 만든 적이 없고 홍콩, 싱가포르 등에 있지만 민간인과 공무원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대한민국 검찰과 같은 기능을 하는 기관은 동서고금을 통해 수없이 있었고, 그 공정성 확보를 위한 많은 제도가 연구·시행됐다. 그 핵심은 ‘선발’과 ‘인사’다. 검사의 신분을 보장함으로써 고용주, 인사·감독권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을 내릴 때도 신분상의 불이익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되며, 이로써 업무의 독립이 보장된다고 보는 것이다.
검찰이 정치권력에 예속된 계기는 이승만 정권에서 검찰총장 김익진의 수난사였다. 악질 친일경찰의 대명사인 노덕술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검거됐는데, 수도경찰청장 김태선이 관용차로 노덕술을 도피시키고, 경호경관까지 붙여준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총장 김익진이 김태선을 범인은닉 혐의로 수사하라는 엄정한 지시를 내리자, 경찰은 이승만에게 떼를 써서 검찰총장 김익진을 서울고검장으로 좌천시켜 버렸다. 이승만 정권은, 검찰총장에서 고검장으로 강등되는 굴욕을 참고 버티던 김익진을 1952년, 그의 먼 친척인 의열단원 김시현이 주도한 이승만 저격 계획에 얽어 구속시켜 버렸다. 이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로 검찰 수뇌부가 구성되면서 정치 도구화된 검찰은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됐다.
현재 검사 인사 제도를 그대로 두고 검사들에게 권력에 맞서서 정의를 실현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대한민국의 검사는 평검사의 경우 2년에 한 번, 부장검사 이상은 1년에 한 번씩 인사이동을 한다. 다음 인사에서 어느 지역의 어떤 보직을 맡게 될지 알 수 없고, 가족과 얼마나 떨어져 지내야 하는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검사 인사를 청와대에서 직접 관장한다. 불과 몇 달 뒤면 인사가 있는 상황에서, 인사에 불안해하는 검사들이 권력자나 상급자의 뜻을 거스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단기적으로 고검 단위의 검찰 인사 제도 재편이 필요하다. 검사 인사에 국민의 실질적인 참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검찰총장이나 검사장을 국민이 선출하도록 하여 검찰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라도 받도록 해야 한다.
국민은 거악에 맞서는 검찰을 원한다. 그런데 그 거악으로 지목되는 곳에서 검찰의 인사권을 가지고 검찰을 장악할 수 있는 제도를 그대로 두고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검증된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면한 채 편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권을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지난 20년간 10여 회 발의됐다가 헌법 체계 불합치 등 문제가 많아 폐기된 공수처 법안을 다시 꺼내어 검찰을 개혁한다는 것은 헛된 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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