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주장 상법개정안 통과땐
지주회사 전환도 지연될 우려
전자투표제, 악성루머에 취약
소액주주들 실익은 별로 없어
국회가 상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자사주 처분규제 부활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야권에선 기업의 인적 분할 시 새로 설립되는 회사의 자기주식에 대해 분할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등 자사주 처분규제를 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자사주 처분규제를 부활할 경우 기업의 경영권 방어는 현재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뿐 아니라 순환출자 해소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주회사 전환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16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인적 분할 시 신설법인의 자사주에 대해 분할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인이 보유한 자사 주식인 자사주는 상법상 의결권이 없다.
그런데 인적 분할을 하면 기존 회사 주주들은 분할된 회사의 신주를 원래의 지분 비율만큼 배정을 받고, 신설 법인들의 자사주는 의결권이 생긴다. 가령 대주주 50%, 자사주 20%, 소액주주 30%의 A 회사가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인적 분할을 하면 A 지주회사는 대주주 50%·A 지주회사 자사주 20%·소액주주 30% 등으로, B 사업회사는 대주주 50%·A 지주회사 20%·소액주주 30% 등으로 각각 지분이 구성된다.
이 경우 B 사업회사에선 50%(대주주)+20%(A 지주회사)=70%로 대주주 지배력이 확대된다. 하지만 박 의원 발의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B 사업회사는 A 지주회사 신주 배정이 금지돼 대주주 62.5%, 소액주주 37.5% 등으로 지분이 변경된다.
사실 정부는 지난 2011년 기업의 경영권 방어 지원과 대기업 그룹의 지주회사 촉진 차원에서 자사주 취득을 허용하고 처분규제를 삭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기업 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은 요원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배구조 개편을 준비해온 기업들의 밑그림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그룹을 필두로 지주회사 전환 검토를 공식화한 롯데그룹, 올해 상반기 인적 분할을 추진하는 현대중공업 그룹, 매일유업, 오리온 등이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의 일관성이 무너져 혼란만 키운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계는 이와 관련, “다른 나라처럼 마땅한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자사주 처분규제 삭제는 그나마 경영권 방어 역할을 해왔다”며 “규제 부활은 정책을 신뢰한 기업에 치명타가 될 수 있고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확대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의 다른 조항도 기업의 경영 리스크(위험)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여야가 합의한 전자투표제 의무화의 경우 악의적 루머 공격 시 투표 쏠림 현상이 나타나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관련 시스템 구축 비용 역시 기업에는 부담이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주와 자회사 주주 간 이해 상충을 유발할 수 있다. 미국, 일본 등도 이를 감안해 제한적인 범위에서 시행하고 있다.
또 감사위원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소액주주·우리사주조합 추천인사의 사외이사 선출 의무화 등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기업의 경영권을 현저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재계는 반발하고 있다.
이 조항들은 대기업 그룹 대주주 권한 약화, 소액주주 권익 증대 등의 차원이라는 명분에서 추진되고 있으나 이로 인해 경영권 약화가 불가피하고 현실적으로 소액주주보다는 2~3대 주주, 해외 펀드, 기관투자자 등이 이득을 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소액주주들이 힘을 합치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설사 표를 모은다 해도 지분율이 적기 때문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기본적으로 이 제도들은 1주1의결권이라는 시장경제원칙을 위배할 뿐 아니라 주주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가령 집중투표제의 경우 미국 22개 주에서 지난 1940년대 도입했으나 부작용이 많아 줄줄이 폐지되고 현재는 애리조나 등 5개 주만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칠레, 멕시코, 러시아 등 3개국만 의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회경·유현진 기자 yoolog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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