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 정신이 고갈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렸을 때, 그때가 바로 자신의 퀘렌시아(안식처)를 찾아야 할 때이다. 그곳에서 누구로부터도, 어떤 계산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 자유 영혼의 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자아를 회복하는 길이다.”(‘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의 ‘퀘렌시아’ 중)
류시화(59·사진) 시인이 새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더숲)로 돌아왔다.
시를 쓰며 번역 작업도 활발하게 해 온 작가이지만, 산문집으론 생애 세 번째 작품이다. 첫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1991)에 이어 두 번째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1997) 이후로 무려 20년 만이다.
오랜만의 재회지만 류 시인 특유의 시선과 울림이 여전히 깊이 배어 있다. 벌써 수십 년째 실천에 옮기고 있는 인도, 네팔 등지로의 여행을 통해 얻은 삶에 관한 통찰이 51편의 에피소드에 꽉 들어차 있다.
책은 끊임없이 묻고 답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일깨운다. 서문에서 류 시인이 밝힌 것처럼 “내가 묻고 삶이 답하는” 방식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해답을 추구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면 삶이 그만큼 더 소중해진다. 자신이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은 행운아임을 안다면 무의미한 고민이나 일들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주어진 날들이 선물처럼 다가온다. … 가장 아까운 것이 ‘매 순간을 살지 않은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가장 창조적인 행위는 삶의 매 순간을 붙잡는 일이다.”(‘죽음 앞에서’ 중)
따라서 부질없는 과거에 파묻혀 현재를 낭비해선 안 된다. 류 시인은 “되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라며 “모든 과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날개에 매단 돌과 같아서 지금 이 순간의 여행을 방해한다”고 역설한다.
“우주의 모든 요소들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만 매 순간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므로 “행동하는 날, 그날이 바로 길일”이니 인생의 봄날을 잡으라고 조언한다.(‘지금이 바로 그때’ 중)
이번 산문집은 독자의 오랜 기다림에 대한 류 시인의 성실한 응답이면서 상실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다. 읽기 쉬우면서도 한 번 더 곱씹게 하는 문장들이 오래도록 가슴에 여운을 남긴다. 여행을 앞둔 독자라면 꼭 곁에 챙겨가 볼 만하다.
류 시인은 서문에서 “젊었을 때 나는 삶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삶에 대한 해답은 삶의 경험들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이라며 “내게 깨달음을 선물한 것은 삶 그 자체였다. 여기 모은 산문들은 내가 묻고 삶이 답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길을 잃더라도 떠나고, 실망하더라도 사랑하라”며 “이 불확실한 시대에 내 글이 위로나 힘이 되진 않겠지만, 나는 다만 길 위에서 당신과 함께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라고 밝혔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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