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현실적이거나, 너무 환상적이거나. 최근 막을 내린 뉴욕과 런던의 패션위크를 비교한 말이다. 뉴욕은 패션계에선 유례가 없는 ‘메시지’가 가득했다. 미국의 정치·사회적인 상황을 읽을 수 있었으나 지나치게 현실 반영에 적극적이어서 불편했다는 시선도 있다.

런던은 그 반대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 복잡한 현실은 저 멀리 제쳐 뒀다. 도망치기라고 하려는 듯 꿈과 환상의 세계에 더욱 깊이 침전해 들어간 느낌이다. 런웨이란 곳은 늘 생소한 법이지만, 이번에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여하튼, 뉴욕이나 런던이나 리얼웨이에서 입기엔 힘든 옷들로 넘쳐났다는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에 분개한 뉴욕 패션계는 비판적인 입장을 패션쇼를 통해 표출했다. ‘나는 이민자다’ ‘혁명엔 국경이 없다’와 같은 문구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을 비꼰 ‘미국을 뉴욕처럼’까지 다양한 말들이 런웨이를 점령했고, 반이민 정책의 대표적인 대상이 될 무슬림들이 직접 런웨이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테러리스트를 연상케 하는 가면을 쓰거나(위 사진), 히잡을 둘러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런던의 패션계는 판타지가 점령했다. 화려한 왕관과 풍성하게 부풀려진 치마, 형형색색 원색의 드레스, 모델의 워킹이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구조적인 디자인…. 영국 대표 브랜드 버버리가 이를 선도했다. 버버리의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영국의 조각가 헨리 무어로부터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의상은 전체적으로 중세의 갑옷과 엘리자베스 시대의 화려한 목 장식(아래) 등을 떠올리게 했는데, 현지 언론은 “예술문화유산을 패션과 접목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찬사를 보냈으나, 뉴욕타임스는 “앞이 캄캄할 때는 환상 속으로 후퇴하는 게 안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에둘러 인색한 평을 내놓았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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