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회원이 23일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북한대사관 앞에서 ‘말레이시아를 존중하라’는 포스터를 들고 북한의 김정남 암살에 따른 말레이시아 주권 침해에 항의하고 있다.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회원이 23일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북한대사관 앞에서 ‘말레이시아를 존중하라’는 포스터를 들고 북한의 김정남 암살에 따른 말레이시아 주권 침해에 항의하고 있다.
말레이 정부, ‘VX테러’ 결론
북한의 “쇼크사” 주장 뒤집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예상


김정남 암살 사건을 수사해온 말레이시아 당국이 김정남 체내에서 ‘VX’로 불리는 신경작용제가 검출됐다는 사실을 24일 발표해 북한 정권이 김정남 암살에 치명적인 화학물질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에 대한 친족살해와 함께 금지된 화학무기의 사용으로 북한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김정남 사망을 ‘공화국 공민의 쇼크사’라 부르고 ‘암살 사건은 남한이 대본을 짠 음모책동’이라고 한 북한 정권의 주장은 설 땅을 잃게 됐다. 또 북한이 타국에서 국제적으로 개발 및 사용이 금지된 독성 화학무기를 사용한 점이 드러나면서 북·말레이시아가 최악의 외교 관계 국면에 들어간 것은 물론 북한의 반인도적인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김정남 사인 규명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김정남 사인 후 혈액 샘플 분석 등을 통해 사인 규명의 결정적 단서인 ‘스모킹 건(smoking gun)’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하마터면 영구미제가 될 뻔한 김정남 독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관 직원 등 김정은 정권이 직접 개입된 기획 암살극 수사가 가속도를 내게 됐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초기부터 북한 정권의 개입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한국 정부가 제공한 김정남의 지문인식 등을 통해 사망자가 김정남이라는 확고부동한 물증을 확보하고 있어 북한 당국의 ‘남한이 대본을 짠 음모책동’이란 황당한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계속 수사 공정성과 객관성에 흠집 내기를 하는 적반하장식 대응을 할 경우 말레이시아 측이 국교 단절 등 초강경 조치를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말레이시아 보건부 화학국은 지난 15일 진행된 김정남에 대한 부검에서 얻은 샘플을 분석해 왔으며 이날 사망자의 눈 점막과 얼굴 부검 샘플에서 VX가 발견됐다고 구체적으로 실체를 공개했다. 말레이시아 보건부 화학국 명의로 발표된 보고서는 부검 샘플을 분석한 결과 ‘VX’로 불리는 신경작용제 ‘N-2-디이소프로필아미노에틸 메틸포스포노티올레트’가 사망자의 눈 등 얼굴에서 검출됐다고 적시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정남 사망 직후 채취한 혈액 샘플 등의 분석을 통해 VX 성분을 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생화학무기 및 생물방어 분야 권위자인 이남택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생물방어연구소 부소장은 “사망 직후 혈액 샘플을 냉동 보관하면 혈액 안의 분해 효소 활동이 낮아져 독극물 성분이 일부 남아있게 된다”며 “생화학분석 능력이 뛰어난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협조 등을 통해 독극물 실체를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VX 가스는 사린 가스에 비해 휘발성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지용성이라서 눈이나 얼굴에 잘 스며들어 신체 접촉에 의한 눈과 얼굴 공격 시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민구 국방장관도 국회 국방위에서 김정남 사인 원인 중 하나로 VX 신경가스를 거론했다. 북한도 40여 가지의 생화학 무기 중 하나인 VX 신경가스를 독소 무기로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역시 VX를 화학전에서만 사용되는 가장 강력한 신경제로 분류하고 있다. VX는 현재까지 알려진 독가스 가운데 가장 유독한 신경작용제로 수 분 만에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호흡기, 직접 섭취, 눈, 피부 등을 통해 인체에 흡수되며 사린가스보다 100배 이상의 독성을 발휘한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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