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오른쪽) 대통령이 1954년 군자리 골프장에서 열린 제1회 한국 아마추어 골프대회에서 토마스 메츠커에게 우승 트로피를 건네고 있다.
이승만(오른쪽) 대통령이 1954년 군자리 골프장에서 열린 제1회 한국 아마추어 골프대회에서 토마스 메츠커에게 우승 트로피를 건네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과 골프 - 1 이승만 前 대통령

1949년 8월 15일. 정부수립 1주년 기념 축하 연회장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배석한 주한 외교 사절들에게 인사말을 건넨다. “휴일에는 어떻게 소일하십니까?” 외교관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특히 미국 대사관 관계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는 단 한 곳의 골프장도 없어 일본 오키나와(沖繩)로 날아가 미군 기지 골프장에서 골프를 하고 옵니다.” 한국에 골프장이 없어 외교관들이 일본을 다녀온다는 것이었다. 오키나와에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골프장을 만들어 놓았다.

심기가 불편해진 이 대통령은 옆에 있던 총무처장에게 “당장 우리나라에 골프장을 건설하세요”라고 지시했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골프장 건설은 곧바로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해방 후 4년이 지났건만 남과 북이 38선을 경계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우방 외교관들이 골프 하러 주말마다 자리를 비우는 게 걱정스러웠고, 이 틈을 타 북한이 남침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사실 골프장은 일본보다 국내에 먼저 생겼다. 1897년 원산항 인근에 영국 세관원들이 6홀짜리 골프장을 조성했으니 일본보다 5년이나 빨랐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21년 일본인들에 의해 용산의 효창원 코스가 만들어졌고, 영친왕도 이곳에서 골프를 즐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24년 이 골프장은 청량리로 이전되면서 ‘경성골프클럽’으로 불렸다. 3년 뒤 다시 현재의 어린이대공원 자리로 옮겨 군자리 골프코스로 명명됐고, 비로소 한국 골프의 토대인 서울컨트리클럽이 태동된다. 이후 평양, 원산, 부산, 대구 등 전국에 여러 곳의 골프장이 들어섰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국내 골프장을 모두 갈아엎어 비행장, 신병 훈련장으로 사용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부 관계자들은 코스 복구에 착수했다. 은행에서 200만 환의 소요 경비를 대출받아 군자리 골프장의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주한 미군이 장비를 지원하면서 9개월 만인 1950년 5월 군자리 골프장이 제모습을 찾았다. 주한 외교 사절들은 이제 골프 탓에 일본에 가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군자리 코스가 복원된 지 정확히 한 달 뒤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북한이 남침하던 그날 새벽, 정부 고관들은 군자리에서 골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외교관들이나 한국 관료들이 6월 25일 새벽에 오키나와로 원정 골프를 떠났다고 가정한다면, 한국 근대사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소름이 돋는다. 3년 뒤 휴전 후 군자리 골프장은 다시 복구 작업에 들어가 1954년 재개장했다.

군자리 코스는 정치와 관련된 로비 장소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외교 사절들과 미 장성들, 고위 정치인들이 모여 골프를 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외교는 군자리 코스에서 해결되다시피 했다. 물론 이승만 대통령은 연로했던 탓에 골프를 직접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국 아마추어골프대회를 여는 등 골프를 장려했다. 한국 초대 대통령의 골프 사랑으로 인해 한국의 골프는 그렇게 명맥을 유지하면서 다음 세대를 맞이한다.

남양주골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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