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생애 / 이승우 지음 / 예담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왜 우리는 그로 인해 변화하는가.

진지하고 관념적인 글을 써왔던 중견작가 이승우(58)가 5년 만의 컴백작 소재로 ‘사랑’을 선택한 것은 조금 의외다. 그것도 TV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남녀 간의 ‘삼각관계’라면 말이다.

‘생의 이면’(1992) 같은 초기작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천착했던 저자는 이번엔 누구나 경험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녀 간의 사랑을 해부한다. 더 정확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와 행동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재는 가벼워 보여도 이를 풀어가는 방식은 묵직하다. 저자 특유의 합리적, 분석적 잣대를 현미경처럼 들이댄다.

장편소설이지만 책은 때론 에세이이고, 때론 생물학적 분석서 같다. 만남과 헤어짐, 의심과 질투 등 연인들이 흔히 겪는 모든 ‘과정’에 충실하지만 사건과 사건, 대화와 대화 사이에 스며 있는 관념적 사유가 주어진 공간을 뛰어넘는다. 사실 이 모두를 걷어내면 줄거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통속성과 정형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주고받는 대화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다.

형배는 동료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2년 10개월 전 헤어졌던 연인 선희를 만난다. 2년여 전 그는, 선희의 말처럼 “흡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듯”이 “사랑할 자격이 없어서”라고 핑계 대며 그녀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선희는 전혀 다른 사람 같다. 크고 까만 눈, 하트 모양의 귓바퀴, 그리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웃음까지. 돌연 사랑의 감정을 회복한 형배는 며칠 후 선희의 집까지 찾아가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선희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건 좀… 제멋대로라는 생각 안 들어요?”

“맥락이 감정을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한다’는 말은 그럴 가능성이 유난히 높은 말이다. 아름답고 황홀한 말이지만 그만큼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말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듣는 순간 우주가 흔들리는 전율을 느끼지만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온몸을 움직여 떨쳐버리고 싶은 이물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사랑의 생애’ 중)

어색한 재회에 ‘제3의 남자’가 끼어든다. 선희가 형배에게 차인 후 새로 만난 영석이다. 4세 때 부모를 다 잃은 영석은 선희에게 강한 모성애를 느끼며 집착한다. 그런 그에게 선희의 ‘과거 남자’는 받아들이기 힘든 존재다. 영석은 질투와 분노를 쏟아낸다.

등장 인물의 정형성이나 줄거리의 흐름이 그동안 우리가 익히 봐왔던 삼류 연애소설의 그것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뻔한 보편성을 특별하게 만드는 게 저자의 저력이다. 이번에도 그는 관념적 언어유희와 섬세한 이성을 통해 ‘사랑’이라는 불가해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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