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국제정치학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내정 간섭과 경제적 보복 조치가 노골화하고 있다. 중국의 고위 관리들이 공개적으로 한국의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우리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성주골프장 부지를 제공한 롯데 그룹의 중국 현지 기업들의 영업을 방해하고 있고, 중국 여행사들에 중국인들이 한국 여행을 못 하도록 규제를 가하고 있다. 이런 조치들에 대해서 중국 정부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이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라는 점에 비춰보면 중국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근 사드 보복 조치와 관련된 행태를 보면 중국이 ‘패도적 패권국가’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자유무역질서와 같은 새로운 국제 무역 규범을 만들어내고 자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런 규범을 유지해 나가면서 여기서 생기는 이익을 다른 국가들과 공유하는 패권국가는 ‘왕도적 패권국가’이다. 대영제국 시대의 영국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두 패권국가에 의해 생겨난 국제정치 질서를 각각 ‘팍스 브리태니카’와 ‘팍스 아메리카나’로 부른다. 최근 중국의 행태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외교적 관례와 국제 경제 규범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패도적 패권국가’로 타락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행태를 보면 앞으로 중국의 국력이 부상한다 하더라도 국제사회가 ‘팍스 시니카’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미국에 대해서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구축하자고 제의했다. 최근 중국의 사드 배치와 관련해 취해진 일련의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들을 보면 중국은 ‘신형’이 아니라 완전히 국가 간 주종관계를 중심 원리로 하는 ‘구형’의 조공관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시진핑 주석을 비롯해 중국의 외교전략가들은, ‘대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이 커진다고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대국은 새로운 국제정치의 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국제정치 질서 규범을 만들어내고 모든 국가가 그 질서에서 나오는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갈 때 비로소 ‘대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중국은 대국으로서 다른 나라들이 인정하는 새로운 가치와 규범을 제시한 적이 없다. 이러한 중국 외교 전략의 한계점이 이번 사드 보복 조치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지금처럼 중국은 ‘완력국가(腕力國家)’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왕도적 패권국가’로 거듭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한국은 패권국가들과 달리 국제정치 질서의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다. 이는 한국 외교가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미국 같은 ‘왕도적 패권국가’와 중국 같은 ‘패도적 패권국가’에 대한 분별력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분별력이 없는 야당의 대선 주자들과 정치인들이 북핵(北核)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 무기인 사드 배치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우리 사회가 내부적으로 분열됐다.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 압력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일치단결해 대응했다면 중국이 지금 같은 보복 조치들을 노골적으로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안보 문제에 관한 한 초당적 대응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초당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면서 동시에 중국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함과 동시에 보복 조치의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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