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大 키워드’로 본 沈

“박근혜 실패, 女실패 아니다”
‘언니 리더십’으로 분열 치유

‘뾰족구두女’서 운동권 전향
25년 노동운동 후 정치무대로

‘철의 여인’보단 ‘걸크러쉬’
추억 대신 미래 여는 진보로

“진보정치 실패” 고백했지만
여전히 ‘바닥권’ 정당지지율

公的 권력의지 필요성 깨달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내세워

대한민국 핵심 과제는 ‘노동’
‘슈퍼우먼 방지’ 패키지 준비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45세 이전까지는 노동운동가로, 그 이후론 진보정치가로 살았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들어오면서 25년에 걸친 노동운동 생활을 접었다. 이후 3선 의원에 진보신당 공동대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정의당 원내대표 및 당 대표를 맡으면서 ‘학출’(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는 ‘노출’(노동자 출신) 정치가로 변신했다. 그러나 13년간 열정을 쏟아부은 진보정치는 여전히 ‘거대한 소수’가 아닌 ‘미약한 소수’로 남아 있다. 정치무대 아래의 민생을 돌보는데 부족했다는 평을 받았고, 진보 진영 내부에서조차 분열과 대립의 문화를 극복하지 못했다. 탄핵과 진보의 시대에서도 진보정치의 존재감을 내보이질 못했고, 정당 지지율은 바닥권을 맴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 대표가 이끄는 진보정치의 미래에 주목해야 할 이유도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보정치의 실패’를 용기 있게 고백했고, 투쟁성과 선명성에 앞서 일자리와 청년을 얘기하면서 심 대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움트기 시작했다. 심 대표는 7일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기자와 만나 “과거 진보 운동의 수많은 실패를 통해 이젠 집권전략을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결과로 책임지는 공적(公的) 권력의지를 품고 대권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6일 치러진 당내 경선에서 80.17%라는 압도적인 당원 지지로 당 대선 후보로 결정됐다.


여성 주자

심 대표는 이번 대선에서 뛰고 있는 대권 주자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또 다른 여성 대권 후보 타이틀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여성 대통령은 안된다’는 마초주의적 편견에 더해 ‘실패한 여성 대통령’이란 나쁜 선례와도 싸워야 하는 셈이다. 심 대표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았지만 남성 대통령을 더 이상 뽑지 말자 이렇게 말한 적은 없다”고 반박한다. 박 대통령의 실패는 ‘박정희 대통령 딸 박근혜의 실패’지 ‘여성 대통령의 실패’가 아니라고 그는 강조한다. 대신 심 대표는 탄핵 국면 속에 분열과 대립으로 상처 입은 국민을 따뜻하게 품어줄 리더십이 필요한데, 그런 차원에서 모성애를 갖고 있는 여성 후보는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심 대표는 한때 ‘철의 여인’으로 통했지만 지금은 ‘심블리’(러블리 심상정)로 불리길 원한다. 지난해 7월 만들어진 그의 팬클럽 이름은 ‘심’ 자와 ‘여자가 봐도 반할 정도로 멋진 여성’이란 뜻의 ‘걸크러쉬’가 합쳐진 ‘심크러쉬’다.


학출

심 대표는 대학 입학 당시만 해도 바지 대신 늘 스커트를 입고 생머리를 치렁치렁하게 기른 ‘뾰족구두녀’였다. 자신이 괜찮다고 찍은 남자들이 다 운동권인 것을 알고 덩달아 학생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1980년엔 서울대 최초로 총여학생회를 만들었고 그해 ‘공활’을 갖다가 그대로 눌러앉아 구로공단 미싱사로 일한 게 노동운동의 시작이다. ‘학출’ 노동운동가가 된 것이다. 1984년에 전국 수배령이 떨어졌고 1985년에는 격렬했던 구로동맹파업 배후로 지명돼 이후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9년이 걸렸다. 청계피복노조에서 일했고, 서울노동운동연합과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을 주도했다. 남편 이승배 씨도 노동운동 현장에서 만났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사무차장 활동 시절 그의 별명은 ‘철의 여인’이었다. 심 대표는 2003년 민노당에 입당해 정치에 발을 디뎠지만 ‘뼛속까지’ 노동운동가다.

20대 구로공단 미싱사 시절 동료들과 물놀이를 갔을 때.
20대 구로공단 미싱사 시절 동료들과 물놀이를 갔을 때.

진보정치의 실패

심 대표는 지난 2013년 6월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진보정치의 실패’를 고백하는 반성문을 썼다. 추억에 잠긴 진보 대신 미래를 여는 진보로, 싸우는 진보에서 밥 먹여 주는 진보로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심 대표는 기자에게 “내 신념에서 형성된 것들은 소중하지만, 국민이 일반적으로 갖는 생각과 정서를 내 것에 꿰맞추어 바꾸려 하면 안 된다”며 “국민의 자부심이 곧 진보의 자부심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대표는 애국가를 부르는 국민의 정서를 읽어야 하고, 북한에 대한 온정주의는 득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며, 운동권의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문처럼 말하고 있다. 버려야 할 것을 지키는 게 수구이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게 진보라는 신념은 2013년에 펴낸 책 제목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에도 나타난다. 하지만 여전히 정의당 지지율은 바닥이고 민심은 깊은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 심 대표는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지만, ‘진보정의당’에서 ‘정의당’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말도 나온다. 심 대표는 지지율 5% 정당이 국민으로부터 인정과 신뢰를 받으려면 95%를 바꿔나가야 한다며 일상적 혁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대선 구호 ‘親노동’

심 대표의 대선 톱 슬로건은 ‘친노동’이다. 심 대표는 “촛불 민심을 통해서 드러난 국민의 요구를 한마디로 말하면 ‘같이 좀 살자’였다”며 “국민의 경제권과 노동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기자와 만나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노동운동이 발전했고,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줄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핵심 과제가 노동의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노동을 국정의 제1과제로 삼고 고용노동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킨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직장 일도 하고 엄마 일도 하고 이것저것 다 떠안아야 하는 여성들, 전쟁 같은 삶을 사는 워킹맘을 위해 ‘슈퍼우먼 방지법’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심 대표에게 노동운동권 출신, 혹은 ‘친노동’은 장점이자 한계다. 심 대표는 “노동운동권 출신이어서 진보진영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겠지만, 여전히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운동권에 대한 선입견은 단점”이라고 말했다.


신혼시절 노동운동가 남편 이승배 씨, 아들 우균이와.
신혼시절 노동운동가 남편 이승배 씨, 아들 우균이와.

선거제도 개혁 열망

심 대표는 진보정당의 성공을 위해서는 자체 반성도 필요하지만 제도 개혁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그의 열망은 신앙에 가깝다. 정당 지지율에 비례해 의석수를 보장하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표의 등가성을 지킨다면 원내 교섭단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정의당 지지율을 7%로 볼 때 국회 300석 의석 중 21석을 차지하는 제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심 대표는 “이런 구부러진 선거 제도를 바로잡으면 우리는 무소의 뿔처럼 갈 수 있고 주류 경쟁 체계로 가는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상은 두 가지 난제에 봉착해 있다. 영호남 지역에 기반을 둔 거대 정당 체제에 익숙해져 있는 국민으로부터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하나고, 주류 정당으로부터 기득권의 포기를 받아내야 하는 게 다른 하나다. 전문가들은 차기 권력이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진보정당의 교섭단체 구성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 건 살벌한 정치야생(野生)에서 자칫 나이브한 생각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대선 완주하나

심 대표에 대한 정치권의 또 다른 관심 중 하나는 대선 완주 여부다. 지난 2012년 그는 대선일을 20여 일 앞두고 문재인 민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한 뒤 사퇴했다. 정권교체 열망을 이루기 위해, 야권분열로 인한 표의 분산을 막기 위해 소수당이 희생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심 대표는 “무조건 완주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결선투표제를 통한 연합정치를 하자는 요구를 묵살하고 작은 정당의 사퇴를 강요하는 문화야말로 승자독식의 정치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고 말했다. 심 대표는 “정치에서 양보란 잘 포장된 패배이고, 특히 소수자와 어려운 사람을 대변하는 후보가 사퇴하면 민주주의가 후퇴하게 된다”는 말로 중도 포기는 없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심 대표는 “정치적 소극성이야말로 정치적 범죄”라며 “정치에는 권력의지가 중요하고, 특히 공적 권력 의지가 충만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도 했다. 대신 심 대표는 대선에서 완주한 뒤 선거 결과를 갖고 승자와 함께 국가운영의 거버넌스를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민 선임기자 minsk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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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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