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홍준표 <시리즈 끝>

탄핵 정국 와중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예상보다 일찍 대권 레이스를 접은 후 인물 기근을 겪고 있는 보수 진영에서 갑자기 떠오른 인물이 홍준표 경남지사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한 2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마자 특유의 입심과 행보로 대선주자로서의 잠재력을 평가받고 있다. 5년여 전 집권여당 내 다수파에 의해 사실상 대표직에서 쫓겨난 뒤 ‘이렇게 끝나버리나’라고 자탄도 했고,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근 2년간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느라 어려움도 겪었지만 일순간 보수 진영의 대선주자로 주목받게 됐다. 홍 지사는 지장(智將), 덕장(德將), 용장(勇將)보다 더 성공한 리더로 복장(福將)을 꼽는다. 이 작은 나라에서도 ‘천운’을 받지 않으면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홍 지사는 모든 장애가 눈 녹듯 사라지고 지지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천운을 기다리는 것 같다. 9일 전화 통화에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비록 ‘무능’하고 따라서 정치적 탄핵이 될지언정 법적 탄핵소추 대상은 될 수 없다”면서도 “국가경영의 의지를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 지사는 여전히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관련한 항간의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원의 최종심이 남아 있고, 한때 정의의 표상이었던 ‘모래시계 검사’ 이미지는 과거 속에 잠겼다. 막말 논란이 늘 그를 따라다니고 정치적 기반도 취약한 ‘변방’ 출신인 데다 보수정당은 둘로 쪼개져 있다.



■‘6大 키워드’로 본 洪

1. 성완종 리스트

2015년 4월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한 후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성 회장 지시로 홍 지사에게 1억 원의 정치자금을 전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는 2년 가까이 성완종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검찰은 홍 지사를 기소하면서 윤 전 부사장도 함께 기소했다. 윤 전 부사장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홍 지사는 2심 무죄 판결로 살아났다. 홍 지사의 무죄로 돈을 줬다고 고백한 윤 전 부사장도 무죄가 됐다. 2심 판결 직후 홍 지사는 “누명을 벗었다”고 했다. 홍 지사는 돈을 진짜 안 받았느냐는 질문에 “실체적 진실은 재판에서 가려지는 것”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홍 지사는 1심 때는 “이게 다 업보”라고 했다. 검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단죄하고 상처를 줘서 업보를 치르는 중이라는 것이다. 홍 지사는 9일 자유한국당을 찾아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났다. 홍 지사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면서 자동으로 정지돼 버린 당원권을 회복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홍 지사는 통화에서 “내 입으로 그 문제를 꺼내기는 입장이 난감하다”며 “당에서 결정하는 대로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2. 모래시계 검사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델 검사 시절.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델 검사 시절.
SBS에서 1995년 1월부터 2월까지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의 ‘강우석 검사’의 모델이 홍 지사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인연으로 홍 지사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모래시계의 배경인 1993년 ‘슬롯머신 사건’ 당시 그는 실제로 서울지검 강력부에 재직 중이었고 조직폭력배들과 잘나가는 국회의원과 현역 고검장을 줄줄이 수사했다. 이후 검찰 조직을 떠났고 1996년 1월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의 전화 한 통으로 정치에 입문해 15대 총선 때 서울 송파갑에 출마해 당선돼 국회에 진출했다. 당시 YS에 의해 함께 개혁공천 사례로 발탁됐던 인사가 민중당 출신의 이재오·김문수 전 의원 등이다. 신한국당 소장파의 한 사람으로 활동했고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아 국회의원직을 상실했지만 2001년 서울 동대문을 선거구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정치권에 복귀한 뒤 17·18대까지 내리 4선을 하고 경남지사에 두 번 당선됐다.

3. 변방의 풍운아

고교 시절 웃통을 벗고 복근을 자랑하며 포즈를 취한 학생 홍준표.
고교 시절 웃통을 벗고 복근을 자랑하며 포즈를 취한 학생 홍준표.
홍 지사 삶의 이면에는 힘들고 서러웠던 가난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2009년에 펴낸 책 ‘변방’에서 홍 지사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점심 도시락을 싸갈 수 없어 매일 뒷동산에서 모진 바람을 마시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수돗가로 달려갔다”고 회고했다. 모래시계 검사의 과단성이나 정의감은 책 제목처럼 이 같은 변방의식에서 싹튼 것일 수 있다. 20년 넘게 정치를 해오면서 어느 계파에 속해 본 일이 없어 ‘황야의 일필랑(一匹狼)’ 소리도 들었다. 홍 지사는 2011년 치러진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당선된 뒤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의 아들, 고리 사채로 머리채를 잡혀 길거리를 끌려다니던 어머니의 아들이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됐다”면서 변방에서 중심으로 온 자신을 돌이켰다. 그러나 그해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 실패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장직을 잃고 두 달 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하면서 리더십 위기를 맞았다. 유승민·남경필·원희룡 등 당시 최고위원이 집단 사퇴로 압박하면서 홍준표 체제는 출범 5개월 만에 무너졌다. 홍 지사는 “쪽팔리게 살지 않겠다”며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4. 막말

홍 지사는 “지금 여론조사 1위 하는 사람(문재인)은 자기 대장(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했다가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야권에서는 “공직을 떠나라”는 소리도 나왔다. 홍 지사는 전화통화에서 “대선 후보 자격을 문제 삼길래 한 말이지 막말도 아니고 사과고 뭐고 할 게 없다”고 말했다. 한술 더 떠 홍 지사는 “노무현이란 사람은 그들한테는 신성한 존재이겠지만 우리한테는 정치적 반대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홍 지사의 ‘설화(舌禍)’는 낯설지 않다. 2008년 10월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엔 퇴임 후 고향에 내려간 노 전 대통령을 향해 “그 사람처럼 아방궁을 지어서 사는 사람은 없다”고 했고, 2011년 10월 홍대 앞 대학생들과의 미팅 때엔 “이화여대 계집애들 싫어한다”고 했다. 그해 한나라당 대표 출마 인터뷰 때에는 나경원 의원을 겨냥해 “거울 보고 분칠이나 하고 화장이나 하는 후보는 뽑아서는 안 된다”고 해 ‘성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언행이 주목도를 높이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라는 평가도 있지만 홍 지사 측 이종혁 정무특보는 “말에 치장이 없고 생각을 직설적으로 털어놓는 성향이어서 그렇지 무슨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5. 야권 ‘정권탈취’론

홍 지사는 야권 주자들이 내세우는 ‘정권교체론’도 따지고 보면 야권이 헌법재판소의 멱살을 쥐고 압박하는 ‘정권탈취론’이라고 주장한다. 헌재에 탄핵 인용을 압박해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조기 대선을 치르려는 게 정권을 빼앗는 ‘탈취’라는 것이다. 지금 진행 중인 국정농단 특검은 잘잘못을 떠나 여론만 따라가는 수사라고 봤다. 정치검찰이 사건을 수사하는 게 아니라 사건을 만든다고도 했다. 그의 이런 관점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세운 정권교체론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야권의 정권교체론은 우격다짐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것이며, 자신처럼 국정농단 책임이 없는 후보가 나오면 그게 실제 정권교체라는 주장이다. 국정농단 세력과 그를 비호해 온 ‘양박(양아치 친박)’과 선을 그으면서 자신이 정권을 ‘사실상 교체’하겠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문 전 대표 평가와 관련, 홍 지사는 “2012년 대선 때 콘텐츠도 없는 박근혜 후보 하나 제압하지 못한 게 문재인”이라면서 “TV토론에서 붙으면 10분 만에 제압할 수 있다”고 깎아내렸다.

6. ‘좌 - 우 대결’ 프레임

홍 지사는 “진보-보수 프레임은 우파가 손해를 보는 프레임”이라며 “이번 대선을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닌 ‘좌파와 우파의 대결’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과 남미의 좌파가 다 몰락했고, 한반도 주변 4강이 모두 극우 국수주의자들인 상황에서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한국의 차기 지도자가 좌파 집단에서 나오면 국난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홍 지사는 통화에서 “국민은 차기 정권이 좌파로 가서는 안 되며 우파 ‘스트롱 맨’의 출현을 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이혼한 게 아니라 별거하고 있을 뿐이고, 강력한 우파 후보가 나오면 범우파 진영이 통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그가 우파 결집의 구심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갈린다. 그의 지지도는 3%대다. 지역 기반이랄 수 있는 영남 민심도 아직은 신통치 않다. 홍 지사는 “탄핵 국면 이후 본격적으로 나서면 지지율이 크게 요동칠 것”이라고 말했다. 홍 지사는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고 대구에서 초·중·고교를 나왔다. 홍 지사는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제갈량의 동풍처럼, 자신이 나고 자란 영남에서 불어오는 훈풍을 기다리는 중이다.

허민 선임기자 minski@munhwa.com
허민

허민 전임기자

문화일보 /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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