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상 비밀문건 崔에 유출
인사·연설문 등 개입 허용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인정
- 대통령 권한남용
미르·K스포츠 재단설립 지원
崔 이권개입에 직간접적 개입
지위 이용 불공정 공무 판단
8명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
국민통합 메시지 의도한 듯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8명 전원일치로 인용한 것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박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가 중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사건이 불거진 뒤 박 대통령이 사실로 드러난 관련 의혹을 부인하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 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해 ‘헌법 수호’라는 대통령의 중대한 임무를 위반했다는 점도 고려됐다.
헌재는 국회가 제출한 다섯 가지 탄핵 소추 사유 중 국민주권주의 및 법치주의 위반과 형사법 위반 및 법률위배 행위를 직접적인 탄핵 사유로 판단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오전 읽은 결정문에서 재판관들은 박 대통령이 ‘비선 실세’ 최순실 씨 등에게 국정 운영을 맡김으로써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박 대통령의 지시 또는 방치에 따라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많은 문건이 최 씨에게 유출된 점은 국가공무원법의 비밀엄수 의무를 위배한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행위는 최 씨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파면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헌재 결정에 앞서 법조계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비선 실세 최순실 씨 등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이 박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핵심 쟁점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박 대통령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통해 최 씨에게 각종 연설문, 정책 및 인사 자료 171건을 건네고, 47회에 걸쳐 공무상 비밀이 담긴 문건을 이메일로 전달하는 등 ‘문건 유출’ 행위가 ‘국민주권주의’를 위반하는 행위라고 봤다. 구체적으로 △각종 연설문 등 정책·인사 자료 유출 △최 씨의 사익을 위한 의도대로 문화·체육 분야 고위 공직자 임명 △최 씨의 능동적 국정 개입을 허용해 국민이 선고를 통해 위임한 대통령의 권력을 비선 라인을 통해 행사한 점 등이다. 헌재는 이 같은 점을 근거로 박 대통령이 헌법 제1조 국민주권주의를 비롯해 대의민주주의(헌법 제67조 제1항), 대통령의 헌법 수호·준수 의무(헌법 제66조 제2항, 제69조) 등을 위배했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 측의 주장인 “최 씨가 국민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연설문의 일부 표현을 수정한 것일 뿐, 국정 및 인사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는 논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은 첫 준비기일부터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게 언제인지, 최 씨로부터 어디까지 도움받았는지 구체적으로 답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은 최종변론기일까지 이 부분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못했다.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 및 법률위배 행위에 대해서도 헌재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씨의 이권개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형사법 위반 사안이 법원 판결과 어긋날 수 있어 구체적인 판단보다는 해당 사안에서 박 대통령이 어떻게 헌법을 위반했는지를 판단했다.
헌재가 판단한 박 대통령의 법률위배 항목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자금 모금 관련 범죄와 롯데그룹 추가 출연금 범죄 등이다. KD코퍼레이션·플레이그라운드·포스코·KT·그랜드코리아 등과 관련해 최 씨에게 특혜를 제공하기 위한 범죄 행위 부분도 법률 위배 항목으로 인정했다. 박 대통령 측은 재단 설립 등에 대해 “문화융성이라는 국정 기조에 따라 추진한 사업이며 기업에 대가를 약속하거나 기금 출연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으나 헌재는 최 씨에 대한 각종 특혜의 성격에 대해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했다”고 적시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계기가 된 미르·K스포츠재단의 성격에 대해서도 헌재는 “두 재단의 임직원 임면, 사업 추진, 자금 집행 등을 박 대통령과 최 씨가 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박 대통령 파면의 중요한 근거 중 하나로 박 대통령이 사건을 은폐하려 한 점을 꼽았다. 헌재는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여야 함은 물론,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박 대통령은 최 씨의 국정 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 장치가 무력화됐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헌재는 “박 대통령의 위헌·위법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했다”고 강조했다. 탄핵 소추 사유와 관련, 박 대통령의 언행이 이 같은 위법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헌법재판관 전원이 판단한 것이다. 박 대통령과 대통령 측 대리인이 검찰·특검 수사를 회피하고 국민의 비판에 강경 대응하는 등의 행위가 오히려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8명의 재판관이 만장일치로 박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한 것은 그만큼 박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가 중대하고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정미 소장대행은 주문을 낭독하기 전 “박 대통령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며 “박 대통령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박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만장일치로 재판관이 파면 결정을 내린 것은 박 대통령의 헌법·법률 위반이 명백하다는 것에 더해 탄핵 찬반 집회로 인한 국론 분열이 심각하다는 판단에,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도 해석된다. 이 대행은 결정문 낭독에 앞서 “이 선고가 국론 분열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가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앞서 헌재는 8명의 재판관으로 선고를 내리는 점, 국회에서의 탄핵소추 절차 등이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통령 대리인단 측이 주장했던 절차적 문제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민병기·정철순·이후연 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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