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생활’ 79년에 막내려
박정희 측근들 배신속에 칩거
98년 당선 뒤 유력정치인으로
‘40대0’완승 이끈 선거의 여왕
‘원칙·신뢰’ 이미지 타격 입어
파면 이어 검찰소환도 불가피
헌정 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19년 정치 인생에서 짧았던 영광의 순간을 뒤로하고, 이제부터는 자연인 신분으로서 검찰 수사에 이어 법정 구속의 위기로 내몰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박 전 대통령은 6·25전쟁 중인 1952년 2월 2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육군 소령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교사 출신인 육영수 여사의 2녀 1남 중 장녀였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1963년 2월에는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때부터 박 전 대통령은 영애(令愛)와 영부인 대행으로서 18년간 청와대에서 지냈다.
화려했던 그녀의 인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측근인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서거하면서 내리막을 걸었다. 영광의 순간에 자신과 아버지를 둘러싼 측근들은 대부분 그녀와 동생들에게 등을 돌렸다. 대통령 탄핵의 원흉으로 국정농단 사건의 주역인 최순실만 배신하지 않고 최측근에서 박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칩거하던 박 전 대통령은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미래연합 창당 등 혼란기를 거쳐 유력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시점은 2004년이다. 박 전 대통령은 ‘차떼기’로 상징되는 불법 대선자금 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면서 정계의 주목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2년 3개월 동안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 등에서 당시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40 대 0’이라는 완승을 끌어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유력 대권 주자로 발돋움했고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도 나섰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와 접전 끝에 패배했다.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박 전 대통령의 연설은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던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해 2013년 2월 우리나라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30%대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펼쳤다. 하지만 집권 4년 차에 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모든 영광을 빼앗아갔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탄핵 소추안을 가결하면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데 이어 마지막 기회였던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에서도 박 전 대통령은 인용 결정을 피해가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제 검찰의 칼날 위에 서야 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으로부터 관련 사건 일체를 넘겨받은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 결과와 관계없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방침을 밝힌 만큼 조만간 소환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만용 기자 my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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