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는 식민지와 함께 시작됐다. 일제강점기 시대 해석을 놓고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이 있고, 그 중간쯤에 ‘식민지 근대성’이란 테제가 있다. 한국의 근대성을 탐구하는 저술에서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건 ‘식민지시대와 근대를 저자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느냐’이지만, 식민지시대 근대 건축가들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시대’가 아니라 ‘사람’을 조명하면서 이런 논쟁을 비껴간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건축가란 전통 건축 대목들의 기능을 이어받은 ‘새로운 집 짓는 기술자’에 불과했다. 기술자는 흔히 ‘가치 중립적 존재’로 치부된다. 총독부 건물의 건축에 참여하고 매판 기업인의 건물을 지었다고 해도 건축주가 문제가 됐을 뿐 건축가들이 친일 논란에 휩싸이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이다. 문학가가 민족개량론을 말하면 공분을 사지만, 건축가가 재래주택의 일본식 개량론을 얘기하면 그 방식만이 관심거리였다. 당시의 건축가들은 돈을 받고 건물을 지어주는 그저 무색무취의 존재였을 따름이다.
식민지 교육체제 아래서 일본의 서구 모방 건축을 배울 수밖에 없었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친일과 항일의 꼭짓점이 아닌 이른바 ‘회색 지대’에서 살았던 건축가들은 이렇다 할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그들의 자취가 희미한 건 이 때문이다.
건축가가 쓴 이 책은 식민지시대 근대건축을 시작했던 이른바 ‘B급 건축가’들의 삶을 먼지 속에서 끄집어내 들여다보고 있다. 저자는 그들이 남긴 건축의 가치를 가늠하는 비평적 시각이 아니라 그들이 건너온 삶과 추구했던 가치에 시선을 두고 있다. 책에는 아홉 명의 우리 건축가와 조선으로 건너왔던 두 명의 일본인 건축가,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건축물을 설계한 미국인 건축가가 등장한다.
다양하게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행적을 좇고 때로는 추론과 3인칭 전지적 시점까지 동원해 들여다보는 건축가들의 삶은 흥미롭다.
책 첫머리에 소개한 건축가는 조선 최초로 서구식 근대건축 교육을 받고 1937년 서울 종로 네거리에 들어선 화신백화점 등 수많은 건축물을 설계하면서 승승장구해 ‘최초’와 ‘유일’의 신화를 써내려갔던 건축가 박길룡. 저자는 그가 건축가로 명성을 날리면서 얻은 영향력으로 차별받던 조선 건축가들을 품어낸 이야기를 풀어낸다.
동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천도교의 중앙대교당 본당 건물을 설계한 일본인 건축가의 얘기도, 선교사로 일본에 왔다가 평생의 꿈이었던 건축 일을 시작해 일본에 건축사무소를 내고 조선 땅에서 대구 계성학교 본관 등 많은 건축물을 남긴 미국인 건축가의 얘기도 흥미진진하다. 책에 담긴 건축가들의 삶과 다양한 예화는 그들이 지어 남겨둔 근대건축물 답사자료로도 훌륭하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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