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화단의 이단아’였다.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1회 졸업생이었지만 전통을 중시한 동양화단에서 그는 1958년 초현실주의적 화풍의 ‘바닷가의 환상’을 내놓으며 파란을 일으켰다. 이어서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선 아예 필묵을 버리고 화선지를 화판에 콜라주하는 추상회화를 통해 재료와 기법면에서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고 권영우(1926∼2013) 화백의 이야기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오는 16일부터 4월 30일까지 ‘단색화가’로 알려진 권 화백의 개인전 ‘Various Whites’ 전이 열린다. 국제갤러리 2관 1층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초기 동양화 작품과 패널에 한지를 붙여 제작한 1960∼1970년대 작품, 그리고 이후의 백색 한지 연작 시리즈 등 3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1970년대부터 본격화한 한지 작업, 즉 손톱 혹은 일련의 도구를 반복적으로 이용하여 종이를 자르고, 찢고, 뚫고, 붙이는 행위 등을 통해 물성의 촉각적인 지점이 강조된 작품들이 주요하게 선보인다는 것이다. 여러 겹으로 겹쳐진 한지를 통해 권 화백은 섬세한 질감과 입체감 있는 표면으로 리드미컬한 조형성을 만들어냈다.
권 화백의 당시 ‘한지 작업’ 결과물에 대해 화단에서는 ‘단색화’와 별도로 ‘백색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40여 년이 넘도록 권 화백이 추구했던 이 고유의 기법들은 기존 동양화를 실험적으로 재조명하고 새로운 기법을 개척한 업적으로 꼽힌다.
“저 나름대로 생각할 적에는 회화이지 동양화, 서양화란 구별을 굳이 두지 말자. 그것이 기름 물감으로 그렸든, 서양화적인 화법으로 그렸든, 요는 그 작품이 발산하는 그 체취가 무언가 동양적인 것을 발산할 적에 그것은 동양화다, 저는 그렇게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서양화와 동양화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그는 생전에 자신의 작업에 대해 그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전시에서는 작품 활동에 실제로 사용한 붓, 작가가 생전에 촬영한 1990년대 인터뷰 영상들이 포함된 작가의 ‘아티스트 인터뷰’ 영상이 함께 준비돼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작가의 생생한 육성과 당시 증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권 화백은 조용한 성품의 소유자여서 개인적인 면모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국제갤러리의 전민경 팀장은 “이번 전시에서는 권 화백의 단색화 이전 1950년대의 구상적인 그림과 1970∼1980년대의 흰색 한지를 이용한 작업결과물인 백색화를 감상할 수 있다”며 “한국의 단색화가 국제화단에서 조명을 받기 이전까지 걸어온 여정의 한 축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술애호가들은 단색화 하면 먼저 박서보나 하종현, 정상화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화단에서는 권 화백을 ‘미발굴된 작가’로 인정하고 있다. 세계적 아트페어인 제5회 아트바젤홍콩(3월 21∼22일)이 새로운 조명이 필요한 작가의 작품을 집중 전시하는 캐비닛 섹터에 그를 초청한 것도 화단의 그 같은 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캐비닛 섹터에 참가하는 19개 갤러리 중 유일한 한국 갤러리인 국제갤러리는 캐비닛 섹터를 통해 1978년부터 1989년까지 파리에 체류하던 시절에 제작한 권 화백의 대표적인 채색 한지 작업들과 함께 작가가 참여했던 전시 도록과 리플릿, 직접 수집한 스크랩 기사, 미공개 사진, 서신 등을 공개한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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