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외교·안보 부처 고위직을 지냈거나 친(親)문재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진보 좌파 성향 인사들로 주축을 이룬 단체가 안보 국정(安保國政)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임동원·정세현·이종석 등 전직 통일부 장관이 공동이사장·상임대표·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는 한반도평화포럼은 13일 ‘긴급 논평’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통일·외교·안보 관료들은 지금 즉시 모든 행동을 중단하고 더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헌재 선고 직후 “그릇된 외교·안보 정책과 민생 포기 정책을 모두 즉시 동결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비(非)이성을 이은 것으로, 과연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

이들은 엄연한 사실부터 왜곡하고 있다. “탄핵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모든 정책의 탄핵을 의미한다”며 ‘즉시 멈춰져야 할 정책’으로 주한 미군의 사드 배치를 지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정부 정책과는 무관하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직·간접적 책임이 인정되고, 그것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정도가 대통령 직의 계속 수행을 용인할 수 없다고 헌재가 판단했던 것이다. 외교·안보 정책과는 더더욱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이들이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은 외교가 국민의 이익에 직접적인 해악을 입힌 희대의 참사로 기록될 것” 운운하며 사드 배치를 ‘탄핵된 정책’으로 규정한 것은 앞뒤부터 맞지 않다. 개성공단 폐쇄,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을 ‘실정’으로 거론한 것도 엉뚱하긴 마찬가지다.

또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그렇잖다면 “소란스러운 국내 정세를 틈타 야밤에 도둑질하듯 무기(사드)를 가져다 놓는 것은 동맹국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는 막말로 반미(反美) 감정을 드러냈겠는가. 혹 그런 안보관을 갖고 있더라도 공식적으로 집권한 뒤에나 할 일이다. 해괴한 논리에 저급한 품격의 ‘점령군 행세’다. 공직과 안보의 기본이라도 이해한다면 이렇게 나대진 않을 것이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