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위기의 대한민국 ‘시간이 없다’

국제사회 北제재 가닥잡았는데… 대선 주자들 정책 부정 땐 혼란
‘北에 시간제공’惡手 두면 안돼… 安保 정책 이어가야 국가 안정

눈치만 봐 왔던 造船 구조조정… 次期 넘기지 말고 적극 나서야
노동개혁 3法 등 시급한 입법… 국회가 국정공백 해결 힘쓸 때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 블랙홀처럼 모든 사안을 빨아들이면서 대한민국의 국정 시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야권의 대선 주자들은 민감한 현안을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는 입장에서 사실상 ‘국정 스톱’을 외치고 있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체제의 정책 추동력도 약해지는 분위기다.

새 정부 출범과 새 권력 창출까지 남은 시간은 55일 정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 상황의 극복을 위해서는 정부는 한시도 쉬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갈등 요소가 있는 새로운 정책의 결정은 피해야 하지만 모든 국정 현안을 수수방관 상태로 놓아두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시간을 어정쩡한 상태로 허비할 것이 아니라 위기를 헤쳐 나가는 ‘골든 타임’으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 정치의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 북한은 스커드-ER(추정) 미사일 4발을 지난 6일 발사하는 등 도발 위협을 지속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정치의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 북한은 스커드-ER(추정) 미사일 4발을 지난 6일 발사하는 등 도발 위협을 지속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안보·통일 정책의 안정성 필요 =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15일 “대통령 부재로 새로운 이니셔티브 창출로 나갈 수는 없다고 해도 일단 북한 핵 대응을 위한 대북제재 행보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주한미군 배치는 예정대로 추진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분야의 경우 대외적인 국가의 신뢰도를 유지하려면 정부는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에 나서지 않고, 대선주자들도 기존 정책을 전면 뒤집는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를 철회하려면 한·미가 다시 협의하는 절차가 필요한 만큼 대중 선동을 지양하고 충분한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조화순 연세대 정외과 교수도 “한·미 양국의 사드 주한미군 배치작업으로 중국의 경제보복이 거세지만, 사드 문제는 박근혜정부에서 정리된 사안으로 볼 수 있다”면서 “사드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 등 외교·안보 현안에 국제적으로 ‘일관된 태도’를 견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제재와 압박으로 방향을 잡은 대북 정책만 해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기조를 수정하자는 목소리가 있지만, 성급한 대북 정책 수정은 북한에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만 제공하는 악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정부의 정책 중에서 커다란 이견이 없는 사안들을 일관성 있게 마무리 짓는 작업은 대한민국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박 교수는 “시급한 국제정세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파트너가 없어 정상 외교를 추진하지 못하는 아쉬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정권 인수 기간이 없는 상황에서 각 대선 주자 캠프에서는 외교 안보 정책의 커다란 방향을 결정해 미리 한·미 정상회담 등을 준비하는 방안의 검토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 침체로 고용이 얼어붙은 가운데 서울 시내 한 대학의 군데군데 비어있는 채용정보 게시판에 지난 2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연합뉴스
경기 침체로 고용이 얼어붙은 가운데 서울 시내 한 대학의 군데군데 비어있는 채용정보 게시판에 지난 2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연합뉴스

◇중단없는 구조조정 추진 = 탄핵 정국으로 정부가 가장 크게 동력을 상실한 정책 분야는 산업계의 구조조정이다. 정부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전에 조선·해운 등에서 ‘경쟁력 없는 기업은 퇴출시킨다’는 원칙을 수립했다. 구체적으로는 단계별 기업 정리와 산업 재편의 계획까지 세워 놓았다. 현재 구조조정은 ‘일단 멈춤’ 상황을 맞고 있다. 구조조정의 시간을 놓치면서 비용만 계속 증가하는 상태다. 정부가 정책 결정을 하지 못한 채 구조조정을 미룰 경우 차기 정부의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 교수는 “정부는 지난해 10월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통해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의 빅3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면서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계속 돈을 넣어가면서 끌고 갈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다음 달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를 갚지 못할 것이란 소문이 퍼져 있다. 김 교수는 “만약 정부의 신규지원이 없으면 법정관리 상태로 가게 되는 데, 정부가 대선 기간 중에 신규 지원 결정을 내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차기 정부에 구조조정의 폭탄을 넘기지만 말고 유일호 경제팀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미국발 금리 인상 현실화 가능성에 대비해 당장 가계부채 관리 방안 등을 수립해 중·장기적으로 위험을 분산시킬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차기 정부가 경제정책을 연속성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선제적 작업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협의 법안의 초당적 국회 처리 목소리 = 노동개혁 3법(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은 행정부가 아닌 입법부에서 처리가 늦어져 물거품 위기에 처해 있다. 관련 법안은 지난 2월 국회에서 각 당간에 이견이 좁혀져 법안 통과 직전까지 갔지만 해당 상임위에서 다른 법안 처리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 탓에 끝내 불발됐다.

이정 외국어대 로스쿨 교수는 “근로수당문제나 통상임금 지급 등은 노사정 합의가 이미 끝난 사안으로, 국회에서 입법만 해주면 된다”며 “다른 사안과 연계시키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나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처리되면 최소 7만 개, 많게는 15만 개의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는데, 대선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3월 임시국회는 개점휴업 상태며 4월 정기 국회는 개회 자체가 불투명해져 답답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시급한 입법 현안에 대해서는 국회가 나서 국정 공백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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