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本紙에 ‘故 정미경 작가 작품 공간’ 게재 김병종 화백

“지난 1월 아내와 사별하고 잠 못자고 밥 못먹고 지내”
“그녀의 진면목 알릴 의무감… 아주 간절하게 쓰고 싶었죠”
“소설 ‘나의 피투성이 연인’ 지금 이 상황과 너무 닮아”


“제가 과연 아내의 작품 공간에 대한 원고를 쓸 수 있을까, 처음엔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원고를 쓰면서 저 스스로 치유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느낌입니다.”

김병종(64) 서울대 미대 교수. 화가이자 문필가로도 널리 알려진 그는 지난 1월 아내인 소설가 정미경 씨를 잃었다. 정 씨는 지난해 12월 암 선고를 받은 후 한 달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만 57년의 삶이었다. 마니아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던 중견 소설가 정 씨의 갑작스러운 타계는 문학계 안팎에 큰 충격을 줬다. 남편인 김 교수가 넋을 놓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김 교수와 정 작가는 대학생 때 각기 모교였던 서울대와 이화여대를 배경으로 쓴 소설을 한 잡지에 게재한 인연으로 만났다. 400여 통의 연애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결혼한 두 사람은 부부이자 예술 동지였다. 정 씨는 발병한 후 수술이나 항암 치료를 한사코 거부하고 집에서 남편과 지내고 싶어 했다. 부부는 한 달 동안 함께 지내며 책도 읽고 산책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마치 신혼으로 회귀한 듯한 시간을 보낸 후, 정 씨는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지난 2월 하순, 문화일보는 김 교수에게 가혹한 요청을 했다. “정미경 선생의 작품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저희 기획 시리즈 ‘명작의 공간’에 써 달라.”

김 교수는 “고마운 제안인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잠을 자지 못하고 밥도 잘 먹지 못하고 있다. 위험한 상태라는 게 의사 친구 말이다”고 했다. 그의 음성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간절히 쓰고 싶다”고 했다. 아내가 작가로서 이상문학상을 받는 등 인정을 받긴 했으나, 노력과 함량에 비하면 그 평가는 미미한 편이었다는 것이다. “정 작가의 재능과 노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서, 그의 진면목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습니다. 보나 마나 펑펑 울며 쓸 것 같아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김 교수에 따르면, 정 작가는 2000년쯤부터 서울 서초구 방배동 지하 원룸을 작업실로 사용했고, 이곳에서 혼자 혈투를 벌이는 것처럼 소설을 썼다. ‘밤이여 나뉘어라’ ‘무화과 나무 아래’ ‘무언가(無言歌)’ ‘프랑스식 세탁소’ 등 수작들이 여기서 나왔다.

“이번에 그 작업실에 가서 아내의 유품을 정리했는데, 미발표 유작도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그것들을 책으로 펴내자고 하더군요. 이 상황이 아내가 썼던 작품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내용과 너무 닮았습니다. 소설 속에선 작가인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남편 유작 출간 문제를 놓고 아내가 고민합니다. 사적 편지, 일기 같은 것도 있기 때문에 생전에 센세이셔널리즘을 혐오했던 남편이 그런 일을 슬퍼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내는 괴로워하지요. 현실에서는 남편인 제가 고민하고 있지요. 아내와 남편을 바꾸면, 소설이 현실을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예견하고 있는 셈입니다.”

정 씨는 작가로서의 성취를 열망하면서도 남편과 두 아들 뒷바라지를 ‘성직처럼’ 해냈다는 게 김 교수의 회고. “제가 열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컸습니다. 경상도(옛 마산) 출신의 아내는 결혼한 후 제 고향(전북 남원)에 내려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두 아들을 키웠지요. 그러면서 글을 썼습니다. 신춘문예 당선 희곡 ‘폭설’이 거기서 쓴 작품이지요. 이렇게 저만 아는 숨은 이야기들을 세상에 알리고 싶네요.”

김 교수가 정 작가의 작품에 대해 쓰는 ‘명작의 공간’은 이번 주 금요일(17일)자부터 2회에 걸쳐 게재된다.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