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의 검은색 건물이 근대문화재 제363호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이다.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도시개발공사 현장 한복판에 마치 철거를 앞둔 건물처럼 위태롭게 서 있다.
왼쪽의 검은색 건물이 근대문화재 제363호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이다.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도시개발공사 현장 한복판에 마치 철거를 앞둔 건물처럼 위태롭게 서 있다.
1970년 근대문화재로 지정돼
원래는 농어촌公 소유였으나
2015년 SH로 넘어가며 문제
2년 보수작업 없이 훼손 위기


국내 유일의 일제강점기 농업 관련 근대문화재인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이 공사장 한복판에서 수년간 방치된 채 심각한 훼손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해당 문화재의 소유자가 공기업인 SH공사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 일대에서 대규모 도시개발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3-2지구(중앙공원 정비지구) 한가운데 있는 문화재인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이 이렇다 할 보호 조치 없이 공사장 소음과 진동에 의한 충격, 건물 훼손과 화재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것으로 지난 13일 확인됐다.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은 지난 1926년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건물이다. 일제강점기 근대문화유산 중 농업 관련 펌프장으로는 유일해서 1970년 문화재청에 의해 근대문화재 제363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2015년 보호 주체가 농어촌공사에서 SH공사로 넘어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당장 보수와 복원이 필요한 건축물인데 SH공사가 소유자가 된 이후 지금까지 2년이 넘도록 한 번도 보수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SH공사 측은 “보수 및 복원을 위한 ‘현상 변경’ 신청을 2014년 말 문화재청에 했고, 2015년 초에 소유권을 이전해왔다. 그러나 즉각적인 보수가 늦어진 것은 근대문화재의 성격상 세부 리모델링 설계에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라며 “우선 문화재 주변에 안전 펜스를 설치하고 건물 안에는 소화기를 비치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배수펌프장이 위치한 곳은 아파트 개발 공사의 한복판으로 건물 훼손 위험이 어느 곳보다 큰 편이다. 마치 배수펌프장이 ‘알박기’ 건물처럼 공사 현장의 한가운데 고립돼 있다. 주변엔 수시로 건축자재를 실어나르는 대형 트럭이 지나가고, 폐건축자재가 산더미처럼 흩어져 있으며, 바로 옆에서 터파기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매우 혼잡한 상황이었다.

또 배수펌프장이 문화재임을 알리는 표지판 같은 게 보이지 않아 마치 철거 대상 건물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문화재인지 미처 모르고 있었다. 현장 공사 이외에 별도로 지시받은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SH공사 측은 “지난해 9월까지 보수 및 복원을 위한 리모델링 설계 후 이에 대한 건축 허가 신청서를 지난 1월에 담당기관인 강서구청에 제출했다. 자체 총공사비 15억 원을 책정했다”며 “빠르면 다음 달에는 리모델링 착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SH공사의 해명은 뒤늦은 감이 있다. 보수 작업이 2년 이상 지연된 탓에 문화재는 벽에 낙서가 생기고 지붕이 떨어지는 등 벌써 심각하게 손상됐다.

문화재청 측은 “문화재의 소유자가 개인이나 법인인 경우, 소유자가 현상 변경을 위한 수리 보조금을 신청하지 않으면 사실상 법적으로 보수 및 복원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 소유자의 자발적 의지가 중요하다”며 “SH공사는 소유권 이전 직전에 현상 변경을 신청했으나 지금까지 어떤 수리 보조금도 신청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경위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보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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