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신 그림으로 독자와의 만남을 시도한 김승옥 작가가 그린 순천 대대동의 무진교 풍경화.   아르테 제공
글 대신 그림으로 독자와의 만남을 시도한 김승옥 작가가 그린 순천 대대동의 무진교 풍경화. 아르테 제공

김승옥 ‘그림으로 떠나는…’

황동규
황동규
특유의 도시적 감성을 감각적 문체로 승화한 ‘무진기행’의 김승옥(76) 작가가 그림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여름 전국을 다니며 그린 아름다운 풍경화 60여 편을 모아 생애 첫 전시회를 열기도 했던 그가 자신의 그림과 글을 묶어 그림 에세이 ‘그림으로 떠나는 무진기행’(아르테)을 펴냈다.

2003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졸중으로 작가에게 모든 것이랄 수 있는 언어를 빼앗긴 그는 달아난 언어 대신 그림을 선택했다. 재활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일상적인 거동을 할 수 있게 된 그는 눈에 비친 세상의 풍경을 수채화에 담기 시작했다. 자신의 고향이자 ‘무진기행’의 무대가 된 순천에서 시작해 광양의 매화마을, 부산의 해운대, 목포의 유달산, 중국 용정의 윤동주 생가까지 인상 깊은 풍경들을 화폭에 담았다. 유치환, 박목월, 김춘수 등 한국 문학을 이끌어온 대표 작가들의 생가와 시비 등을 그렸고 시인 김지하, 황동규, 문정희, 평론가 염무웅 등 평생 깊은 인연을 맺어온 문인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염무웅
염무웅
글을 대신한 운명이었지만 그림은 그에게 글만큼이나 오랜 인연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콩트를 곧잘 그렸고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엔 일간지에 연재만화를 그리며 학비를 조달할 정도로 소질이 있었으니 말이다.

지난 전시회의 성공을 발판으로 나온 그림 에세이집에는 작가의 풍경화, 인물화, 문인 초상화가 실렸고 그 풍경, 그 작가, 그 문인에 대한 글이 함께 수록됐다. 여전히 명사, 몇 안 되는 동사 정도를 구사하는 필담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그이기에 작가 자신이 필담으로 이전에 자신이 썼던 글 중에서 어떤 부분, 어떤 대목을 실었으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내면 출판사에서 출처를 찾아 정리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문화평론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추천의 글을 통해 “운명은 그에게서 언어를 빼앗아갔지만 그의 점과 선, 색채의 면들을 자아내는 생의 기하학을 침범하지 못했다. 오늘 기적처럼 우리는 김승옥의 글이 아니라 그 그림들과 만난다”고 평했다.

김 작가는 직접 발언 대신 정리된 책 서문을 통해 독자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제게 있어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는 전혀 별개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 소설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소설을 통한 저와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 글쓰기와 말하기를 잠시 거두어 가신 하느님께서 감사하게도 그림 그리는 일은 허락하셨기에 아쉬운 대로 그림을 통해 그분들과의 만남을 시도해 보고자 합니다. 이 책을 통해 교감해 주시길.”

한편 책을 기획·진행한 함성주 북이십일 기획위원은 작가를 대신해 “작가가 자신의 문학관이 있는 순천과 서울에서 각각 한 달의 절반 가량씩 보내며 지낸다”며 “작가 자신이 명사와 약간의 동사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것을 답답해한다”고 근황을 전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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