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용 논설위원

2008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을 초빙해 대통령 직속의 ‘스티글리츠 위원회’를 구성했다. GDP의 한계를 극복할 신경제지표 연구가 목표였다. 이 결과물을 담은 책 이름이 ‘GDP는 틀렸다’다. 스티글리츠는 “GDP 증가만을 추구하다간 정작 국민을 더 못 사는 사회로 몰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지표의 맏형인 GDP의 쇠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GDP의 황금기는 세계화 열기가 들불처럼 번졌던 1990년부터다. 그 척도를 견주는 독보적 지표였기 때문이다. 그 위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전 세계적으로 소득 양극화가 극에 달했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 GDP는 무용지물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경제학자들로부터 버림받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GDP의 결점은 태생적이었다. 이는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국 사이먼 쿠즈네츠 교수에 의해 개발됐다. 그는 197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한데 이 성장률의 맹신을 꼬집은 이도 그다. 그는 “한 나라의 국민 행복, 복지는 국민소득 측정으로 추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들 변수까지 반영한 대표적인 국제 지표가 OECD의 ‘더 나은 삶 지수’(BLI)다.

통계청이 며칠 전 한국 삶의 질 학회와 공동으로 ‘삶의 질 종합지수’를 내놨다. GDP 통계 추계를 독점한 한은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공개한 ‘야심작’이다. 국내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 지수에 따르면 기준연도인 2006년 대비 2015년 1인당 실질 GDP 증가율은 28.6%이다. 반면 삶의 질 지수는 11.8% 올랐다. 삶의 질 개선속도가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이 국내 처음으로 입증된 것이다.

하지만 이 지수도 국민 체감과는 괴리가 크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사교육비 부담이 사상 최악인 데다 세월호 사건으로 안전에 대한 국민 불신이 고조된 상황에서 교육과 안전 분야가 성장률에 버금갈 만큼 개선됐다는 수치 때문이다. 하필이면 대선 주자들의 ‘퍼주기 복지공약’이 판을 치는 이때 왜 그 구실을 주는 통계를 내놨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도 적잖다. 더 큰 걱정은 한국 경제는 아직 배고프고 갈 길이 구만리인데 벌써부터 대선 주자와 경제 각 주체에게 ‘성장 무용론’의 환상을 깊이 심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