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당당했다. 차별 가득한 세상이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고 믿으며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들의 일을 묵묵히 해나갔다. 실력을 내세우거나 자만하지 않고 그저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그들은 영웅이 됐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히든 피겨스’(감독 시어도어 멜피·사진)에 나오는 세 명의 흑인 여성 이야기다. 천부적인 수학 능력을 지닌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과 프로그래머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저넬 모네이) 등은 나사(미항공우주국)에서 일하며 꿈을 키웠다. 하지만 1960년대 미국은 인종과 성차별이 심각하던 시절로, 나사도 마찬가지였다. 흑인 여성들은 지하 공간에서 지내며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고, 밥도 따로 먹어야 했다. 이들에게는 단순한 업무만 주어졌고, 회의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이들은 이런 상황을 정면돌파하며 미국 최초 유인 인공위성의 궤도를 정확하게 계산해내고, 처음 도입된 IBM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법원에 청원을 내 백인 전문학교에 입학하는 등 새로운 역사를 썼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묵직하지만 이야기를 밝은 톤으로 풀어내며 다양한 재미를 선사한다. 또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이 팽팽한 긴장감을 안겨준다.

실화를 바탕으로 탄탄하게 짜인 줄거리에 배우들의 명연기가 더해져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나왔던 타라지 P 헨슨은 역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내는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표현해냈다. 또 ‘헬프’의 옥타비아 스펜서는 포용력을 갖춘 그룹 리더를 보여줬으며 ‘문라이트’의 저넬 모네이는 강인한 의지와 끈기를 가진 인물을 개성 있는 연기로 소화해냈다. 이 밖에 케빈 코스트너, 커스틴 던스트, 짐 파슨스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연기 내공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지난 2015년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 받은 캐서린 존슨과 나사 수석 역사학자 빌 배리 박사의 노력으로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재현됐으며 천재 뮤지션 퍼렐 윌리엄스와 영화 음악계의 거장 한스 치머가 만들어낸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배리 박사는 이 영화를 “여러 측면에서 장벽을 무너뜨린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평했다. 12세 이상 관람가.

김구철 기자 kc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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