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탁의 장자 이야기 - (23)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끝>
정치인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한 요인 중 하나는 그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지나칠 정도로 단순한 화법이 오히려 신뢰감으로 작용해서다. 그런데 대통령의 정치적 몰락에도 커뮤니케이션이 적잖게 기여했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 보여준 그녀의 커뮤니케이션은 실망을 넘어 공분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신년 초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회견도 그러하다.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화법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대통령 화법은 무엇보다 명사와 동사로 구성돼야 한다. 그래야만 메시지에 힘이 실린다. 형용사와 부사를 피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날 회견은 형용사와 부사 정도의 문제를 넘어 ‘아’ ‘그’ ‘저’ ‘그런데’ ‘그러니까’ 등 쓸데없는 말만 열거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이런 회견을 왜 했는지 좀체 이해되지 않는다. 말하기 곤란한 부분을 숨기면서 말하려다 이런 화법이 튀어나온 게 아닌가 추측해 보기도 한다. 그러면 말하지 않는 게 더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건 침묵으로 흘려보내라’고 하지 않았던가. ‘장자’의 ‘천도’편 마지막을 장식하는 수레바퀴 기술자인 윤편과 춘추전국시대 최초의 패자인 제환공 간 대화도 이런 교훈을 잘 말해 준다.
제환공이 당상에서 책을 읽는데 당하에 있던 윤편이 수레바퀴를 깎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어떤 거냐고 환공에게 물었다. 환공이 성인(聖人)의 말씀이라 대답하자 윤편은 그 성인이 살아 있는 사람이냐고 다시 물었다. 환공이 죽은 사람이라고 말하자 윤편은 그 책은 고인조백(故人糟魄), 즉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깎아내렸다. 수레바퀴 깎는 기술자에게 무시당한 환공이 화가 나서 윤편의 주장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없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거라고 겁박했다. 윤편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수레바퀴를 깎는 자신의 일에 비춰 설명하겠다고 대답했다.
가령 수레바퀴를 너무 깎아 헐거워지면 바퀴가 견고하지 못하고, 덜 깎아 빡빡해지면 바퀴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헐겁지도, 또 빡빡하지도 않게끔 바퀴를 깎는 게 수레바퀴를 만드는 기술의 정수다. 이런 기술은 손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감응할 뿐 말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다. 그래서 윤편은 자신의 아들에게조차 이 기술을 말로 깨닫게 할 수 없고, 아들 역시 이 기술을 말로 전수받을 수 없다. 이것이 나이 일흔이 돼도 윤편이 직접 바퀴를 깎는 이유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옛사람이 깨달은 바의 진수도 글로는 제대로 전할 수 없다. 그러니 윤편이 볼 때 환공이 읽는 책의 내용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이다.
세상에서 도(道)를 얻기 위해 소중히 여기는 건 글(書)이다. 우리 주위에 많은 책이 널려 있다는 게 단적인 예다. 책이 이렇게 많다는 건 세상을 살다간 많은 사람이 자신의 깨달은 바를 글로 남긴 결과다. 또 사람들은 무언가를 깨닫기 위해 책에 의존한다. 제환공도 나라를 다스리는 도, 즉 치도(治道)를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쓴 책에 의존한 것이다. 그렇지만 글로 전수하는 것보다 더 좋은 건 말로 전수하는 것이다. 말은 상대방의 태도와 행동까지 파악할 수 있는 살아있는 텍스트여서다. 면접이 논술에 비해 지원자의 능력이나 소양을 보다 심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건 이런 이유다. 그래서 글은 말에 비해 죽은 텍스트다.
그렇지만 말조차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는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우리 생각이 너무 복잡하고 주관적이어서 이를 말로 다 담아낼 수 없어서다. 그래서 말보다 더 중요한 건 말로 포장되기 이전의 상태, 즉 뜻(意) 그 자체다. ‘주역(周易)’에 ‘서부진언 언부진의(書不盡言 言不盡意)’, 즉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렇게 보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뜻이 가장 우위에 있고, 그다음이 말이고, 글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수단에 해당한다. 사실 말과 글에 함몰되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달 그 자체로 착각하는 일이 벌어진다.
따라서 말과 글에 의존하지 않고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바람직하다. 어떻게 해야 이런 상태에 이를 수 있을까. 이 문제를 두고 고민했던 사람 중에 가장 설득력 있는 결과물을 낸 사람이 육조(六祖) 혜능(慧能) 선사다. 달마(達磨)가 중국에 선불교의 씨앗을 뿌렸다면 혜능은 선불교의 꽃을 피운 사람이다. 선불교는 달마가 인도에서 수입한 대승불교와 중국의 전통사상인 노장사상이 결합된 것이다. 그만큼 선불교엔 노장사상이 많이 스며들어 있다. 이런 결합 과정은 중국 선불교의 교과서에 해당하는 ‘육조단경(六祖壇經)’에 잘 나타나는데 이 책의 핵심어 중 하나가 바로 이심전심(以心傳心)과 불립문자(不立文字)다.
이심전심이란 마음으로 마음을 전달한다는 뜻이다. 즉 ‘가슴과 가슴으로(heart-to-heart)’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말이다. 이는 ‘머리와 머리로(brain-to-brain)’ 하는 커뮤니케이션과 질적으로 다르다. 머리와 머리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에선 항상 말과 글이 수반돼야 한다. 반면 이심전심의 커뮤니케이션에선 의미 전달과 관련해 말과 글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대단히 제한적이다. 심지어 말과 글 자체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불립문자, 즉 문자로선 진정한 가르침을 전할 수 없다는 개념까지 생겨난다. 이는 문자로는 가르침의 ‘대충’은 전할 수 있어도 가르침의 ‘진수’는 전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윤편이 제환공에게 설한 것과 똑같은 내용이다. 즉 책은 진실의 ‘대충’은 전해도 진실의 ‘진수’는 전하지 못한다.
이에 장자는 ‘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者不知)’, 즉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 구절은 ‘도덕경(道德經)’에도 똑같이 등장하는데 ‘도덕경’에선 왜 그런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감관을 막고, 심관을 닫고(塞其兌 閉其門), 날카로움을 꺾고, 혼란스러움을 풀며(挫其銳 解其粉), 빛과 조화를 이루고, 세속과 함께 하는(和其光 同其塵) 걸 일러 현동(玄同)이라 한다.’ 이런 현동의 상태가 돼야 ‘말하지 않는 아는 사람’, 즉 불언지자(不言知者)가 된다. 노자의 이런 주장은 너무나 관념적이어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장자가 동원한 윤편 얘기는 사실적이어서 생생하게 와 닿는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과 글에 의존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말과 글에 의존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물론 혜능과 같은 훌륭한 선사라면 이심전심의 방식이면 된다고 쉽게 말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런 생각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전달하는 작업도 중요한데 이런 건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사실 글이 있음으로 해서 생각이 공간적으론 먼 곳까지, 시간적으론 한참 후까지 전달되는 게 아닌가. 이처럼 생각을 글로써 시공간적으로 확장하는 것을 가리켜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의미의 냉동과정(freezing process)’이라 부른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메타포의 상실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독한 말, 더욱 심한 말, 더욱 야비한 말만 점점 무성해진다. 이것이 소위 막말정치다. 이 점에선 여권이든 야권이든 매한가지다. 정치를 전투라고 착각해 이런 막말을 쏟아내는 건지….
이런 상황에서 메타포의 복원을 기대하는 건 사치스러운 주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정치에 멋과 여유가 사라진 지 오래다. 박 전 대통령이 실패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인데, 대선을 치른 후에도 이런 식의 정치 풍토는 크게 변하지 않을 듯싶다. 우리 정치에 그나마 마지막으로 이뤄졌던 메타포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버림받은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말한 토사구팽(兎死狗烹) 정도가 아니었을까.
많은 국민은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날 때 한 말씀을 기대했다. 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난 건 지자불언의 관점은 분명 아니다. 그보다는 말하고 싶어도 말할 게 없어서였다고 본다. 그렇더라도 지도자는 그 순간에 한마디 해야 하고, 그것이 지도자의 중요한 역할이자 의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한 리처드 닉슨도 박 전 대통령과 똑같은 심정이었지만 그럼에도 사임연설을 하고 백악관을 떠났다. 그 연설에는 울림이 있었다. 닉슨이 정치적으로 마구 매도당하지 않은 데에는 이 연설이 한몫했다고 본다. 연설 요지는 다음과 같다.
“미국 국민은 (워터게이트 사건 조사로) ‘반쪽짜리 대통령(half time Presidency)’과 ‘반쪽짜리 의회(half time Congress)’를 더 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풀타임 대통령(full time Presidency)’과 ‘풀타임 의회(full time Congress)’를 복원하기 위해선 제가 사임해야 합니다.” (문화일보 2월 15일자 24면 22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 ‘김정탁의 장자 이야기’를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