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토머스
웨스트브룩
웨스트브룩
하든
하든
커리
커리
NBA·NCAA ‘가드 전성시대’

높이 매달린 림에 공을 더 많이 집어넣는 쪽이 이기는 게 농구다. 신장이 크면 클수록 유리한 스포츠. 그런데 농구의 본고장 미국프로농구(NBA)에선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바뀌고 있다. 키가 작고, 게임 리딩이 본업이었던 가드가 선봉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2009∼2010시즌 득점 10위 안에 가드는 2명에 불과했지만 2010∼2011시즌엔 4명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2014∼2015, 지난 시즌엔 득점 톱 10의 절반인 5명이 가드였다. 게다가 2014∼2015시즌엔 러셀 웨스트브룩(191㎝·오클라호마시티 선더)과 제임스 하든(196㎝·휴스턴 로키츠), 지난 시즌엔 스티븐 커리(191㎝·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하든 등 가드가 득점 1, 2위를 차지했다. 올 시즌에도 가드 열풍이 뜨겁다. 득점 10걸 중 5명이 가드이며 웨스트브룩이 1위(31.4점), 하든이 2위(29.4점), 아이자이어 토머스(175㎝·보스턴 셀틱스)가 3위(29.1점)다.

가드 전성시대가 펼쳐진 건 일단 인재가 여럿 등장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트리플더블 제조기 웨스트브룩, 3점 슛의 달인 커리는 가드 ‘쌍두마차’. 2008∼2009시즌에 데뷔한 웨스트브룩은 2011∼2012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5시즌 중 4차례 득점 10위 안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웨스트브룩보다 1년 늦게 NBA에 입문한 커리는 2012∼2013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4차례 연속 톱10에 끼였다.

웨스트브룩은 가드 본연의 임무인 어시스트, 빅맨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리바운드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웨스트브룩은 지난 17일 토론토 랩터스와의 경기에서 24득점, 16어시스트, 10리바운드를 챙겨 올 시즌 34번째 트리플더블을 작성했다. 웨스트브룩이 남은 12경기에서 트리플더블을 8차례 보태면 1961∼1962시즌 트리플더블을 41번 달성한 오스카 로버트슨을 제치고 단일 시즌 역대 최다 트리플더블의 주인공이 된다. 웨스트브룩은 21일까지 68경기에서 득점 1위, 어시스트 3위(10.4개), 리바운드10위(10.5개)를 유지하고 있다. 리바운드 20위 중 가드는 웨스트브룩이 유일하다. 현재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웨스트브룩은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에서 모두 두 자릿수 이상인 사상 두 번째 ‘시즌 트리플더블’을 달성하게 된다.

커리는 2015∼2016시즌 NBA 사상 최초의 정규리그 만장일치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다. 올 시즌엔 25.0득점(12위)으로 처졌지만, 득점기계 포워드 케빈 듀랜트가 합류하며 커리에게 집중됐던 공격 루트가 다양해진 결과. 커리는 2014년 11월 12일부터 지난해 11월 5일까지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에서 역대 최다인 196경기 연속 3점 슛 성공 퍼레이드를 연출했고, 올 시즌까지 사상 최초로 5시즌 연속 200개 이상의 3점 슛을 넣었다.

토머스는 NBA 최단신. 그래서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꼴찌인 전체 60순위로 지명됐지만 화끈한 무력시위를 펼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토머스는 피닉스 선스에서 보스턴으로 옮긴 지난 시즌 22.2득점으로 11위에 랭크되면서 드래프트 꼴찌 출신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더니 올 시즌엔 득점 상위권을 맴돌고 있다.

포인트가드인 웨스트브룩, 커리, 토머스와 달리 슈팅가드로 분류되는 하든은 2012∼2013시즌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득점 톱10에 이름을 올리고 올 시즌엔 어시스트 1위(11.2개)를 질주할 만큼 시야까지 넓어졌다.

가드가 공격의 전면에 나선 건 전술전략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농구의 포지션은 포인트가드, 슈팅가드, 스몰포워드, 파워포워드, 그리고 센터로 나뉜다. 그런데 NBA는 2013년부터 올스타 투표에서 가드 2명, 프런트코트(포워드와 센터) 3명을 선정하고 있다. 포워드와 센터를 한 묶음으로 본다는 건 포지션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뜻. 센터 같은 포워드, 포워드 같은 센터가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가드 또한 마찬가지다. 웨스트브룩, 하든의 예처럼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가드가 공을 몰고 패스하고, 포워드가 중거리슛을 던지고, 센터가 골 밑에서 몸싸움을 펼치는 건 이젠 옛이야기가 됐다. 키 큰 센터를 앞세워 득점 확률이 높은 공격을 구사하던 단조로운 패턴에서 벗어나 가드, 포워드, 센터 모두 어시스트를 배달하고 득점을 올리는 다양한 공격 루트를 활용하고 있다. 특히 슛 정확도가 높은 가드의 득점 의존도가 커지면서 보는 재미는 크게 늘었다. 김동광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NBA에서 포지션의 의미는 사라졌다”며 “이로 인해 박진감 넘치고 특히 스피디한 경기 운영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은 지난 17일 개막된 ‘3월의 광란’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남자농구 토너먼트에서도 드러난다. NCAA는 한발 더 나아가 엔트리에서 센터를 찾기가 어렵다. 가드 2명, 프런트코트 3명이 아니라 가드 3명을 선발 출장시키는 게 유행이다.

아이오와주립대는 17일 가드 4명을 선발로 내세워 네바다대에 84-73으로 이겼다. 이날 아이오와주립대 선발진 중 최장신은 포워드 솔로몬 영(203㎝)이었고 5득점에 그쳤다. 반면에 포인트가드 몬테 모리스(191㎝)는 팀 내 최다인 19득점을 쓸어담았다. 20일 32강전을 통과한 캔자스대는 가드 4명, 포워드 1명으로 스타팅 멤버를 꾸렸고 가드 프랭크 메이슨(180㎝)은 최다인 20득점을 올렸다. ESPN에 따르면 19일과 20일의 32강전에서 승리한 16개 팀의 전체 엔트리 중 센터는 6명에 불과하다. 16강 진출 팀 중 32강전에서 가드 3명을 선발로 내세운 건 10개 팀, 가드 4명은 2개 팀이었다.

5명 중 3명 이상을 가드로 꾸리는 게 올 시즌 NCAA의 트렌드. 김 해설위원은 “스타팅 멤버 중 3∼4명을 가드로 채운다는 건 기본적으로 ‘속도전’을 펼치겠다는 전략”이라면서 “‘형님’인 NBA에서 가드를 중용하면서 빠른 공수 전환을 꾀하는 걸 ‘아우’인 NCAA가 따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SPN 등 현지 언론은 올해 NBA 드래프트에서 가드가 상한가를 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UCLA의 론조 볼(198㎝)을 필두로 워싱턴대의 마켈 펄츠(193㎝),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의 데니스 스미스 주니어(191㎝) 등은 드래프트 상위 지명이 확정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16강에 진출한 UCLA의 주득점 볼은 웨스트브룩에 버금가는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볼은 켄트주립대와의 64강전에서 15득점·4리바운드·3어시스트, 신시내티대와의 32강전에선 18득점·7리바운드·9어시스트를 챙겼다. 32강전 성적은 모두 팀 내 1위다.

손우성 기자 apple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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