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논설위원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박현 작사, 이봉조 작곡의 노래 ‘안개’는 이렇게 시작해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하고 끝난다. ‘색소폰 연주의 명인(名人)’이기도 했던 이봉조는 1968년 개봉된 김수용 감독의 영화 ‘안개’ 주제곡으로 미리 작곡해 우선 자기 연주만으로 취입했다. 부를 가수는 자신의 아내 현미로 결정돼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인 한 소녀의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된 이봉조는 그의 음색과 가창력에 더 매혹됐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영화 개봉 1년 앞서 1967년에 발표된 노래 ‘안개’로 데뷔한 가수가 정훈희(65)다.

맑고 상큼하면서도 애절함이 짙게 밴 목소리를 지닌 그는 데뷔와 동시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의 노래 상당수는 발표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즐겨듣는 사람이 많고, 다른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부르기도 한다. 1964년 ‘동백 아가씨’로 데뷔해 ‘멜로드라마의 대가(大家)’가 된 김기 감독의 1968년 영화 ‘설녀(雪女)’ 주제가인 ‘강 건너 등불’(작사 지웅, 작곡 홍현걸)도 그중 하나다. ‘그렇게도 다정했던 그때 그 사람/ 언제라도 눈 감으면 보이는 얼굴/ 밤하늘에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아∼ 아∼ 당신만을 잊지 못할까/ 사무치게 그리워서 강변에 서면/ 눈물 속에 깜박이는 강 건너 등불’ 하는. 인순이는 가슴 적시는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이 밖에 ‘끝없는 하늘 멀리 별은 멀어도/ 그리운 그 얼굴’ 하고 시작하는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별은 멀어도’를 비롯해 ‘꽃밭에서’ ‘꽃길’ ‘연가’ ‘소월에게 묻기를’ 등도 명곡이다.

한국 가수 최초로 초청받은 국제가요제였던 1970년 제1회 도쿄가요제에서 ‘안개’로 가수상을 받은 뒤 그리스·칠레 등지의 국제가요제에서도 잇달아 수상한 그는 이른바 대마초 파동으로 1975년부터 6년 동안 활동을 중단했다 재개한 뒤로도 많은 사람이 오래 기억할 명곡을 계속 내놓으며 ‘한국의 다이애나 로스’로 불렸었다. 그런 그가 오는 25일 경기 구리시 구리아트홀 대극장에서 여는 ‘정훈희 데뷔 50주년 콘서트 with 송창식’에 이어 전국 순회공연을 한다. 그의 바람대로 ‘미소가 예쁜 할머니’가 되었으나 음색은 여전해 감회에 깊이 젖어들 사람이 많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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