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alliance)의 가장 간결한 뜻은 ‘적을 공유’하는 관계, 그리고 공유한 적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 자원을 공유’하는 관계다. 우리에게 미국은 유일한 동맹 파트너이고, 미국의 경우 40여 국가를 동맹 파트너로 삼고 있다. 비단 안보 분야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이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미친 영향은 매우 크고, 대체로 우리는 한·미 동맹이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맺어진 동맹 중에서 매우 성공적인 사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주말을 끼고 한·중·일 3국을 다녀갔다. 그의 방한 뒷얘기가 무성하다. 아이러니하게도 3국 중 최대 수혜자는 중국이라는 논평에서부터 심지어 만찬 성사 여부를 둘러싼 가십성 얘기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평가는 우리가 처한 엄중한 외교 환경에도 불구하고 틸러슨의 방한을 적극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평소 뉴욕타임스와 대비돼 보수적인 톤을 유지하는 워싱턴포스트조차도 틸러슨의 이번 순방을 따끔하게 꼬집었다.
결국, 우리는 북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느냐,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조금이라도 개선됐느냐 하는 관점에서 세심한 복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먼저, 핵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을 두 핵심축으로 북한이 벌이고 있는 생존 게임은 이미 금선을 넘은 지 오래다. 한·미 공조는 빈틈없이 촘촘하게 북한의 도발에 맞서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정치적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는 대체로 평균 정도의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군사적 옵션만 있는 건 아니라거나, 차기 정부에서 어떤 형태로든 대북 정책 기조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을 모르는 바 아니나, 지금 같은 컨트롤타워 부재 상황에서 꺼낼 대안은 아니다.
그리고 틸러슨 장관의 방문이 중국과 일본까지 포함하는 것이었기에, 그의 동북아 순방이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에 도움이 됐는지의 문제다. 우선, 언론을 상대로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의 지위를 그렇게 노골적으로 차별화시킨 점은, 의도적인 발언이 아니었다면 그의 아마추어리즘에서 비롯됐다고 판단된다. 결국, 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을 해결해 줄 협력자는 일본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워싱턴 정가의 공공연한 공감대다. 그럼에도 미국이 맺고 있는 수많은 동맹 관계는 서로 비교하기 어려운 고유한 기능과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생의 대부분을 석유사업가로 살아온 틸러슨 장관은 곧 터득하게 될 것이다.
순방길에 오르기 전에 중국 사드 보복의 불합리성을 강조하면서, 이 문제를 확실하게 언급할 것처럼 보였던 그는 왜 정작 중국의 공개 석상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을까? 미국 내 여러 보도를 보면, 이번 방문을 준비하면서 틸러슨 장관은 한·중·일에 각각 던질 3가지의 서로 다른 메시지를 확실하게 준비했던 것 같다. 중국은 상호 존중, 일본은 전방위적 협력, 한국은 북한에 대한 강화된 입장이 그것이다.
우리 외교 당국의 전략적 지혜 부족이 몹시 아쉽다. 시급한 과제는 외교 안보 이슈의 ‘정치화(政治化)’를 막는 일이다. 외교 분야에서 박근혜정부의 최대 실수는 ‘외교의 정치화’였다. 국내정치적 목적을 우선시했고, 내치와 외교 사이의 균형을 상실한 결과, 우리는 지금 엄중한 외교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리더십 공백이라는 초유의 순간을 맞은 상황에서, 혹시라도 정치권에서 외교 문제를 정치화하는 잘못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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