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정치학

매년 3월 새 학기가 되면 신입생들로부터 국제 관계 전문가가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소통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게 필자의 답변이다. 그리고 소통을 잘하려면 그 도구와 콘텐츠를 잘 갖춰야 한다고 덧붙인다. 도구는 외국어와 정보기술(IT) 능력이고, 콘텐츠는 정치·경제·법 등 사회과학적 지식이다. 따라서 재학 중 이를 목표로 노력하라고 조언한다.

오늘날의 한반도 주변 상황은 소통 부재의 불확실성으로 치닫고 있다. 그 소통 부재의 이면에는 정치지도자의 편향된 인식이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모두 개별 국가 차원에서 보면 애국적인 지도자일지 모르지만, 국제사회의 협력을 위해서는 소통이 부족한 지도자일 수도 있다. 국제사회에서 소통의 부족은 갈등 해소를 어렵게 한다. 이들 지도자의 공통점은 그 의도는 차치하고 국내적으로 정권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국제적인 갈등 구도를 활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려하는 것은, 이들 정치지도자의 인식이 그들 국민의 인식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비(非)정파적 여론조사 기관인 퓨 리서치센터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중국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과 일본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 모두 지난 10년간 악화했다. 양국 간 비호감도는 각각 86%와 81%로 심각한 수준이다. 그 이유를 보면, 일본인의 눈에 비친 중국은 거만한(arrogant) 존재이고, 중국인의 눈에 비친 일본은 폭력적(violent) 존재인 것이다. 전자는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일본인의 우려를 담은 것이고, 후자는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중국인의 두려움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에 대한 양국의 호감도도 지난 10년간 나빠져 왔다. 특히, 한국에 대한 일본의 호감도가 30%포인트 급락한 것은 최근 한·일 관계를 잘 보여준다. 현 상황이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국제정치학자인 로버트 저비스에 따르면 모든 전쟁은 오인(誤認·misperception)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상대국의 능력과 의도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 전쟁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지적하려는 것은 상대국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정치지도자에 의해 조성될 수 있고, 그 왜곡된 인식이 극단적인 갈등 해소 방법인 전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지금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사드(THAAD) 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보복성 경제 제재는 도를 넘고 있다. 우리 기업에 대한 부적절한 보복 조치는 물론 관광 규제 등 각종 경제적 압박은 단지 경제적 손실에 그치지 않고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을 훼손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은 양국의 경제적 손실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양 국민 간의 정서적 간극의 확대다. 중국의 경제 제재가 단기적으로 우리에게 압박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 경제에도 큰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중국은 직시해야 한다. 수교 후 지난 25년간 경제적 공생관계를 발전시켜온 양국이 우리의 안보 주권 문제를 두고 대립하는 것은 경제적 실익은 물론 우호 관계를 해치는 우(愚)를 범하는 일이다.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는 강대국 간 소통 부재의 혼돈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동족이자 거대한 병영국가인 북한과 맞닥뜨리고 있다. 남북 관계 또한 소통 부재의 상황이다. 최근 북한의 핵(核) 개발 및 미사일 발사 실험은 용인할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주변 강국 정치지도자들이 초래한 소통 부족의 자국(自國) 우선주의가 어떠한 상황으로 귀결될지 우려된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정상외교 부재의 외교적 공백기를 보내면서 새 대통령 선출을 앞두고 있다. 이번 선거에는, 득표를 위해 우리의 외교를 실험해 보려는 대통령 후보가 있어선 안 된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지역 국가 간 외교적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또한, 미래의 통합적 지역 국제관계 형성을 위해, 또 통일을 위해 이제 주변 강국 간의 소통을 주도해 나가는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한반도 정치’를 이끌어갈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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