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채널 주말극 OCN ‘터널’(극본 이은미·연출 신용휘)은 방송을 앞두고 부담이 컸다. 일단 역대 OCN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찍은 ‘보이스’의 후속작이었다. ‘후광 효과’를 노릴 수도 있었지만, 아직 채널 인지도가 높지 않은 터라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면 기대감은 여지없이 실망감으로 바뀌며 채널은 돌아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지원군이자 훼방꾼은 ‘시그널’이다. 과거의 형사가 터널을 통해 현대로 타임슬립한다는 ‘터널’의 설정이, 무전기를 통해 과거의 형사와 현대의 형사가 소통한다는 ‘시그널’과 닮았다는 것이다. ‘제2의 시그널’이라는 수식어가 방송 시작 전 두어 번 홍보거리로는 쓸 만하지만, 방송 시작 후에는 곧바로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터그널’(터널+시그널)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하지만 ‘터널’은 방송 첫 주 만에 이런 짐을 모두 털어냈다. 1회는 역대 OCN 드라마 첫 방송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2회는 케이블, 위성, IPTV가 통합된 전국 유료플랫폼 가구 기준 평균 3.1%, 최고 3.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타깃시청률(남녀 25∼49세) 역시 평균 3.2%, 최고 3.9%를 기록하며 동 시간대 1위였다. 1회의 시청률이 높은 것은 ‘보이스’의 후광 효과가 적잖이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2회의 시청률이 상승했다는 것은 1회를 챙겨본 이들을 통해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돌았다는 의미다.

‘터널’의 인기 요인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게재된 주요 기사를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터널’ 관련 기사 중 가장 조회수가 높은 ‘‘터널’, 상승기류 탔다…최고 시청률 3.7%’라는 기사의 베스트 댓글은 ‘‘보이스’와는 또 다른 재미임’과 ‘시청률 5%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스릴러입니다’다.

이는 ‘보이스’가 보여준 재미에 대한 믿음으로 ‘터널’을 택한 시청자들을 ‘터널’만의 매력으로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연쇄살인을 다뤘다는 측면에서 두 드라마가 다소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보이스’가 소리에 집중했다면 ‘터널’은 과거와 현재, 두 시대를 관통하는 살인의 반복성과 등장 인물들의 관계에 방점을 찍는다.

살인을 저지른 후 30년간 태연하게 살아온 여성 연쇄살인범이 돌연 타임슬립한 박광호(최진혁)의 눈앞에서 자살한 시체로 등장하고, 토막시체의 발뒤꿈치에서는 박광호가 30년 전 해결하지 못했던 연쇄살인범의 흔적이 발견된다. 게다가 박광호와 경찰대 출신의 까다로운 형사 김선재, 프로파일러가 아니라 심리학자라고 스스로를 강조하는 신재이(이유영)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이들의 정체에 대한 추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터널’이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해학’이다. 구식 형사가 신식 수사기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모습에서는 인간미가 흐르고, ‘응답하라’시리즈와 같이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보이스’를 비롯해 강력사건을 다룬 일련의 드라마들이 ‘강강강’ 기조를 이어 가는 반면 ‘터널’은 ‘강약강’으로 완급을 준다. 살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 다소 지친 시청자들에게 ‘터널’은 쉬어가는 템포까지 주는 셈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베스트 댓글은 ‘최진혁 연기력, 목소리 대박…다시 봤다’다. 3년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최진혁은 분명 무게감이 느껴졌다. 부담감 때문에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한데, 정의감에 불타는 ‘상남자’ 형사 역을 맡아 촌스러운 가죽 재킷과 일명 ‘골덴 바지’를 무리 없이 소화하며 힘을 뺐다.

천연덕스러운 코믹 연기도 일품이다. 불의 앞에서는 주저없이 손발이 나가고 욕설을 내뱉지만, 사랑하는 여인에게는 전화 한 통 걸지 못해 랜턴을 켰다 끄길 반복하는 숙맥이다. 현대로 타임슬립한 후에는 버스카드 이용법을 몰라 쩔쩔맨다. 2화 말미에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터널을 반복해 뛰며 “연숙아~~~”라고 아내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르는 모습으로 처연함을 드러낸다.

최진혁은 발성과 발음이 좋은 배우다. 전달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기존 작품에서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했던 그가 ‘터널’을 통해 1980년대 형사를 연기한다고 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방송 한 주 만에 자신만의 박광호를 만들어 내며 이런 선입견을 깨끗하게 털어냈다.

OCN 관계자는 “1980년대를 살던 사람이 2017년으로 건너와 낯선 환경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자칫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최진혁은 안정된 연기력으로 이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며 “특히 1, 2화에서는 그의 출연 분량이 절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초반 ‘터널’의 인기는 그가 소위 말해 ‘하드 캐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시청률 5%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스릴러입니다’라는 시청자 반응은 ‘보이스’의 자체 최고 시청률 5.7%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38사기동대’가 세운 OCN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 역시 5.9%였다. 결국 ‘5%’는 OCN 명품 드라마의 기준인 동시에 역대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는 지표인 셈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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