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석 고려대 교수·행정학

대통령의 파면으로 정권이 끝나게 된 것 말고도, 지난 4년 박근혜정부의 국정 관리 성적은 초라하다. 지금 대한민국을 짓누르고 있는 문제들을 생각해볼 때, 다음 정권의 또 다른 실패는 생각하기도 힘든 일이다.

차기 정부를 위한 정책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아직 각 정당의 대선 주자 선정 단계이긴 하지만,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얻는 비전과 정책 제안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새로운 공약과 정책 제안에 대한 기대의 마음에 앞서, 지난 정부가 왜 실패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박 정권의 국정관리 실패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우선 정부가 국민 신뢰를 많이 잃었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는 세월호 사고란 안전 참사를 방지하는 데 실패했고, 또 사후적으로 수습하는 데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세월호 비극 앞에서 우리는 슬픔을 공유하고, 진실한 위로를 나누며, 새롭고 경건한 다짐을 만들고 실천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불신과 갈등의 마음이 커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정부 신뢰의 위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국민경제의 어려움을 키웠다. 한국의 경제지표가 나빠진 건 사실이다. 박 정부는 임기 2년 차에 들어 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의 이른바 ‘474 비전’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성장률은 2.7%이고, 2015년 1인당 국민소득은 2만7340달러로 2009년 이래 6년 만에 최초로 줄었다. 결국, 국민의 빚이 늘었고 특히 청년과 노년층의 생활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인 어려움과, ‘헬 조선’이나 ‘금수저와 흙수저’의 자조적인 사조가 생기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국민경제의 어려움은 국제적인 경기 상황이나 정책적 판단 착오, 그리고 고령화와 같은 인구 통계적 요인이 만든다. 하지만 자조적인 사조와 국민의 사기 저하는 정부 국정 관리의 실패가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자조와 냉소는 발전 잠재력 저하의 보이지 않는 큰 요인이다.

차기 정부는 또 다른 실패를 피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不信)을 줄이는 일이다. 이를 위해 차기 정부는 비록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가 참으로 어렵지만, 힘을 합해 그걸 풀어보자고 국민과 제대로 소통(疏通)해 신뢰의 마음을 끌어내야 한다.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는 정부의 솔직함과 투명성에서 비롯된다. 실상은 매우 어려운 문제인데,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거나 쉽사리 풀 수 있다고 주장하는 행동은 불신을 조장한다. 예를 들어, 복지에 돈이 많이 들면, 이를 국민에게 알리고 소통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또한, 정부의 국민에 대한 투명성은 대대적인 수준의 것이어야만 한다. 하나의 거짓과 불투명이 정부 신뢰의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반대로 정부의 국민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고, 이러한 신뢰를 정부 혁신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사실 정부가 국민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은 정부의 국민에 대한 신뢰 부족에 기인하는 바 크다. 정부에 똑똑한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들의 똑똑함은 정부 관료조직 안에서 멈춘다. 이러한 점은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똑똑함도 대개 정당이나 국회에서 멈춘다. 우리나라에 한국판 스티브 잡스나 조앤 롤링 혹은 버락 오바마가 있다면, 그들은 정부가 상전 노릇을 해왔던, 국민 중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스스로 더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정부는 ‘머리 좋은 청년’과 ‘혁신 기업’을 선정하려 든다.

정부가 제 할 일을 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를 지닌 민간이 규제에 막혀 억울하게 일을 못 할 경우 이를 풀어줄 때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머리 좋고 승리한 민간들 틈에서 소외된, 실패한 민간을 보호할 때다. 정부는 스스로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정부의 국민에 대한 신뢰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발전할수록 점점 더 중요하다.

한국은 시민 정치 참여와 제도적 절차를 통해 스스로 대통령을 파면시키고 선거를 통해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라다. 그러한 시민 의식과 역량을 지닌 국민이 살고, 제도가 작동하는 나라다. 이들이 못 풀 문제는 없다. 심지어 경제 문제도, 국제 관계 문제도 그러하다. 문제는 국민과 국가의 양방향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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