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취임 2개월 만에 밀어붙인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안)’ 대체 입법안인 ‘트럼프케어’ 실패 이후 미국 언론의 반응은 떠들썩했다. 패배(loss)·실패(failure)는 점잖은 편이다. 붕괴(collapse)에서 대실패(debacle), 실패작(flop), 낭패(fiasco)까지 극적 표현의 단어는 총동원됐다. ‘트럼프케어’ 실패 원인에 대한 분석도 쏟아지고 있다. 코리 로빈 브루클린대 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반(反)이민 행정명령이 (민주당 성향의) 미국인 절반만 분노하게 만들었다면, 트럼프케어는 공화당을 포함해 모두를 소외시켰다”고 지적했다.
톰 코튼(공화·아칸소) 상원의원은 “민주당은 60년간 전국민 건강보험을 추구해왔지만 2009년 정권을 잡은 뒤 8개월간 법안을 제출하지도 않았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불과 18일 만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약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ABO(Anything But Obama)’식 정책을 통해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업적을 뒤집는 데 너무 성급하게 달려들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건강보험과 같은, 대다수 미국인의 이해가 걸린 문제는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는 공화당 내 반성도 적지 않게 들린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조급증이 집권당인 공화당 내부 분열로 이어졌고, 트럼프 행정부가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반이민 행정명령과 오바마케어 대체는 앞으로 임기 4년 내에는 달성하기 어려운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트럼프 행정부의 초기 실수는 오는 5월 9일 한국에 들어설 신임 정부도 쉽게 피하지 못할 것 같다. 한국도 미국처럼 9년 만에 여·야가 교체될 가능성이 크고, 교체된 차기 정부가 기존 보수 정부의 정책을 성급하게 뒤집으려고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월 3대 핵심 안보 현안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한·일 위안부 합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등에 대해 모두 기존 정부 입장을 뒤집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또 문 전 대표는 “우리에게 몇백 배, 몇천 배 이득이 있다”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도 언급한 상태다.
이 때문에 한국의 차기 정부에선 안보 문제가 트럼프 행정부의 ‘트럼프케어’가 될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등지고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안보 문제는 전 국민의 이해, 아니 생사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내적으로뿐만 아니라 대외적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의 위기감은 벌써부터 상당하다. 최근 세미나에서 만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차기 한국 정부가 사드를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미국 측 대표를 지낸 윌리엄 뉴컴은 27일 워싱턴에서 열린 북한 인권 세미나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은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 지원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으로, 재가동을 위해서는 유엔 안보리 15개 이사국의 전원 동의가 필요하다”고까지 못 박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차기 정부가 기존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일방적 뒤집기에 성급하게 나선다면 우리 사회가 얻을 것은 ‘트럼프케어’ 좌절 이후 지금 미국 사회가 목도하고 있는 혼란과 분열밖에 없을 것이다. 이로 인한 장기적 국정과제에 대한 동력 상실도 불가피할 것이다. 특히 이번 5월 대선에서 여·야가 바뀐다면 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3번째 정권교체다. ‘삼세 번에 득한다’는 속담처럼 차기 정부가 변증법의 정·반·합에서 무조건적인 반(反)이 아니라 합(合)을 내놓기를 미리부터 기대해본다.
boyoung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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