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읽어 내려간 ‘대통령 파면’ 결정문 전문의 음절 수를 죄다 세어 봤다. 하이라이트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까지는 6763음절(띄어쓰기 포함). 그가 여기까지 읽는 데 걸린 시간은 21분이다. 보충의견이 더해진 맨 끄트머리 ‘이것으로 선고를 마칩니다’까지는 7030음절에 22분이 소요됐다. 그의 1분당 말 속도는 평균 320음절가량인 셈이다.
1시간 가까운 ‘미련한’ 수작업으로 그의 말 속도를 헤아려본 건 수년 전 접했던 한 기사 때문이다. 당시 공중파 방송의 한 고위직 아나운서가 쓴 논문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1939년 일제강점기부터 2008년 4월까지 30개 뉴스 녹음자료를 통해 뉴스 속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에는 1분당 평균 220음절, 1950년대에는 330음절, 1960년대에는 350음절, 2008년에는 370음절로 세상이 바빠질수록 뉴스 속도도 빨라졌다. 이 기준으로 보면 이 전 대행의 말 속도는 1950년대 뉴스 속도 수준이다. 한 전문가는 “아나운서도 아닌 분이 7000여 음절을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편안한 속도를 유지하며 22분 만에 소화해낸 건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그 아나운서는 ‘느리게, 보통으로, 빠르게’ 등 3단계별 속도로 각각 실험용 뉴스를 만들어 312명에게 들려준 뒤 그 반응도 살펴봤다. 그 결과 뉴스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를수록 뉴스 이해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고 공신력 평가에서도 극히 부정적이었다. 이 전 대행이 ‘적절한’ 속도로 읽은 결정문이 왜 귀에 쏙 들어왔고 신뢰감을 줬는지를 이 논문이 실증해주는 셈이다. 그가 결정문을 읽으면서 벽시계를 세 번 쳐다본 까닭은 파면 선고 효력이 발생하는 주문 읽은 시간을 분 단위로 확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말 속도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일 게다.
이 전 대행의 또박또박한 낭독 못잖게 결정문이 쉽고 간결하게 구성됐다는 점도 극찬을 받았다. ‘미괄식 문장의 진수’라는 호평도 있었다. 결정문은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을 상대로 수차례 ‘송곳 질문’을 해 화제를 모았던 강일원 주심 재판관이 주도적으로 작성했다. 그리고 재판관 8명 전원이 참석한 평의를 거쳐 최종본으로 완성됐다.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이번 탄핵심판 결정문은 8인 재판관 모두의 내공이 결집된 값진 결정체임이 틀림없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