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경희대 교수 국제정치학

지난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살(毒殺)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의 시신이 어디로 인도될지에 국제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으로 인도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마카오로 인도될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이 문제가 왜 중요하고 국제적 관심을 끄는가?

첫째, 김정남의 사망 원인을 둘러싼 공방전의 향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정남이 국제적으로 금지된 화학무기인 VX로 독살됐다고 알고 있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이렇게 발표했고, 국제적으로도 대개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아직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망자가 김정남이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고, 사망 원인도 심장병이라고 주장한다. 김정남의 시신이 북한으로 인도되면, 북한 당국은 재부검을 해서 자신의 주장대로 사인을 심장병으로 규정하고, 말레이시아와 한국이 개입된 조작 사건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말레이시아 외교관들을 인질로 잡는 책략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둘째, 북한 당국, 특히 김정은의 직접 연루 여부와 책임 문제도 걸려 있다. 말레이시아 당국에 의해 김정남 독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북한 국적자는 8명이다. 이 중 4명은 범행 직후 북한으로 도주했고, 1명은 체포됐다가 북한으로 추방됐으며, 3명은 현재 치외법권 지역인 쿠알라룸푸르 주재 북한 대사관에 머물러 있다. 당연히 북한 당국의 개입이 의심되며, 이른바 ‘백두혈통’의 독살에 김정은의 지시가 없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우리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은 김정남 독살이 김정은이 지시한 이른바 ‘스탠딩 오더’에 의한 것이었다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지난 28일 말레이시아의 나집 툰 라작 총리가 김정남 독살을 북한이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CNN이 확인 보도했다.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결국 북한의 책임 문제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와 행정부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문제도 김정남 독살이 북한 당국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 확인을 필요로 한다. 유엔 인권이사회(UNHRC)와 국제형사재판소(ICC) 등 국제사회에서의 논의를 위해서도 북한 정부 차원의 개입 사실을 확정할 필요가 있다. 말레이시아와 북한 간에 이뤄지고 있는 김정남 시신 인도를 둘러싼 협상에서도 이 문제가 중대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김정남 사망 이후 급박하게 돌아가던 국제적 외교전의 승패를 가늠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와 북한은 지난 50여 일간 치열하게 다퉜고, 거의 국교단절 단계에 이르렀다. 김정남의 시신이 북한으로 인도되면, 일단 북한의 외교적 승리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말레이시아의 발표들에 반박할 것이고 자국의 연루 의혹을 부정할 것이다. 중국도 조용한 사태 수습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한국은 정부의 공식 입장을 사실로 뒷받침하지 못하게 되고, 국제사회에서의 북한 규탄도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외교 당국은 말레이시아 외교전 실패에 따른 국내적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김정남의 시신이 말레이시아를 떠나기 전에 김정남 독살이 북한 정부의 소행이라는 사실이 확정되도록 최선의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 최소한 말레이시아 정부 차원에서 이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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