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동묘의 정식 명칭은 동관왕묘(東關王廟)다. 흥인지문 밖 숭인동에 있으며 중국 후한 시기 촉나라의 장수인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임진왜란 시기 파괴됐으나 명나라 신종이 친필 현판과 함께 건축자금을 지원해 재건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동묘는 좀 묘하다. 한국인에게는 관우를 추모하는 사당이지만 중국인에게는 그를 신앙하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도 관우의 혼이 나타나 명나라 군사를 도왔다는 기록이 있듯이, 중국인에게 관우는 위대한 인물을 넘어 관공(關公)이라 불리며 신으로 추앙받는다. 그래서 동묘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자주 방문한다. 중국에서 온 지인이 있다면 함께 가볼 만하다.

한국에서 관우는 보통 ‘삼국지’로 불리는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역사적인 인물이라 역사서에도 등장하지만 소설로 더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런데 유비, 제갈공명 등 쟁쟁한 인물들을 뒤로하고 관우만이 거의 유일하게 중국에서 신으로 추앙되니 아이러니하다. 관우가 위대한 장수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오랜 중국 역사 속에서 가장 뛰어났던 장수라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지금은 돈을 가져다준다는 재물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신이 됐을까.

그것은 그의 신의(信義) 때문이다. 그는 한때 유비와 헤어져 조조에게 의탁한 적이 있다. 조조는 관우를 매우 좋아해 그의 환심을 사려고 벼슬, 재물, 저택, 의복 등 온갖 선물을 줬다. 그럼에도 관우는 자신이 모시는 유비가 있는 곳을 알면 언제든지 떠난다는 조조와의 약조만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나중에 유비의 거처를 알게 되자 유비에게 빨리 갈 수 있는 적토마만을 타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 이런 관우의 신의, 즉 인간의 욕심을 넘어선 신의가 그를 신으로 만든 것이다.

관우의 행동을 현대 상황에 비춰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조조를 대기업이라고 한다면 유비는 벤처기업이다. 조조는 관우에게 대기업 이사직을 제시하면서 높은 연봉은 물론 다양한 혜택을 줬다. 하지만 관우는 이 조건들을 버리고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아니 제대로 시작도 못 한 벤처기업을 선택한 셈이다. 혜택은커녕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벤처기업을 선택했다니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고 하겠지만, 유비와 맺은 신의만으로 이를 선택한 것이다.

관우가 신으로 추앙된 것을 보면 중국에서 신의가 얼마나 중시되는지 알 수 있다. 관우가 죽은 후 처음에는 일부 민간에서 추앙을 받았고, 그의 이야기는 전설로 이어져 더욱 신격화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설은 ‘삼국지연의’로 더 강한 전파성을 갖게 된다. 처음에는 전쟁의 신이었다가 시대가 흐르면서 점차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신이 됐고 지금은 재물신으로 유명하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관우가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을 기본으로 한다. 또 중국은 문화대혁명 등 과거의 전통을 파괴하는 다양한 운동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힘이 막강해 지역에 따라 마조 등 다양한 민간 신앙이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애국주의가 강조되면서 이러한 전통의 복원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그래서 중국인과 대화할 때 관우에 대해서는 조심하는 것이 좋다. 믿지 않더라도 상대에 대한 배려는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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